요한복음 3:16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 가지>라는 책은 임종을 앞 분 호스피스 환자들에게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묻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하는 후회였습니다. 죽음을 앞 둔 사람들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더 표현하고 싶은 사랑이었습니다.

 

수년전 영국문화원은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102개 국가의 4만 명에게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 70가 무엇인가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1위로 뽑힌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는 바로 ’mother’(엄마)였습니다. 바로 사랑을 대표하는 단어이지요.

 

이렇게 우리 인간들은 살아서나 또는 임종을 앞두고도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가장 소중한 줄 알면서도 우리는 정작 사랑하기보다는 미워하고 서로 헐뜯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16)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 많은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직접 오셔서 당신의 사랑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날마다 새로워지며 거룩하여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첫째, 본문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죽이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기쁜 소식을 전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영생과 부활의 소식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죄 된 우리 인간들은 세속적인 사랑을 조건으로 서로 요구하고 서로의 사랑을 비교합니다. 심지어 자기가 원하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보복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믿는 모든 이들에게 아낌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영생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랑으로 우리를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고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심지어 이 사랑은 마치 유모가 자기 자녀를 대함같이 온유하고 부드럽기까지 합니다.(살전 2:7)

 

우리는 사랑을 조건으로 서로 자기 방식대로 남을 조정하려고 하며 심지어 남을 사랑의 노예로 만들려고 합니다. ‘사랑이라는 말로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종의 모습에서 완성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남을 주장하지 말고 오히려 겸손함으로 양 무리의 본이 되는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영생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10:28)라는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더 감사한 것은 이 영생의 선물을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아래 갇힌 우리들에게 오셔서 이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3:22) 이런 놀라운 축복에 거하는 우리들에게 남겨진 가벼운 십자가, 그것은 바로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를 이 아름다운 교회에 불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으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 나아가 민족과 세계를 사랑으로 수놓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