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설교: 교회연합주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연합

(누가복음 9:43-48)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가?”에 대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일면 주님께 선택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늘 동료 제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이 땅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상 그들은 이기심과 교만, 그리고 자랑으로 점철된 인간의 죄 된 모습을 가지고 있었음을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제자들이 보았지만, 그 모든 기적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저들은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9:43). 예수님이 그 크신 일들을 행하신 이유는 주님이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그리고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로 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9:44). 그러나 저들은 세상이 놀랄만한 기적에 관심이 있었지,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에 대해서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영적인 것 보다는 세상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던 저들에게 있어서 누가 가장 큰가?”라는 분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추구하는 교회 연합도 자칫하면 서로 높아지려고 하였던 제자들의 모습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이미 주님께서 피 흘려 사시고 구속하신 교회가 주님의 몸이며(1:23), 우리는 다만 그의 지체(5:30)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몸은 하나지만 그 안에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는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고전 12:1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이며 또 많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지체 중에 가장 큰 것을 고르려 하며, 이미 한 몸이 되었음에 감사하지 못하고 또 다른 것을 찾으려고 헛된 노력을 하면서 분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속적인 가치가 교회에 들어오면, 십자가와 부활이 신앙의 목표가 되지 못하고 세속적 권위(power)나 돈(money), 그리고 지식(knowledge)을 따라가게 됩니다. 개인의 신앙이나 공동체의 순수한 사랑보다도 이 세상의 가치가 교회를 지배하기 시작하면 바로 그 크기를 재는 인간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분열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가 가장 큽니까?

 

주님은 자신이 스스로 크다고 생각한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옆에 세우셨습니다(누가복음 9;46-48). 어린 아이는 지극히 작으며, 세상의 권력이나 지식도 없는 나약한 존재이며, 심지어 성경본문에 그 어린 아이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옆에 선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의 옆에 설 수 있었던 사람은 뜻밖에도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어린 아이였습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바로 어린이였던 것입니다.

하버드대학의 어린이심리학자로서 <어린이들의 영적 삶>(The Spiritual Life of Children)을 저술한 로버트 코울즈(Robert Coles) 박사는 어린이들은 하나님과 가깝다.”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은 평범한 것을 영적인 것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고 그는 주장하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린이들은 생일, 졸업식, 방학과 같은 어떤 날들에 대하여 굉장히 집착하는 듯한데, 그 이유는 어린이들이 단지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날과 연관된 시작에 대하여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어린이들은 어떻게 이런 날들이 가능할까?”라는 호기심을 넘어 이렇게 하신분이 누구일까?”라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일상에서 끊임없이 한다는 것입니다(참고, 창세기 1).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들의 것이며(19:14), 천국을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못하면(18:17),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심은 마치 젖 뗀 아이가 어머님의 품에 안긴 것처럼,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영적 상태(131:2)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더 큰 힘을 기대할 수 있고, 자신의 약함을 이해하는 사람은 다른 약한 지체를 배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힘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자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은 큰 자의 세속적 욕망보다 더 소중한 것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자의 결국은 멸망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신 창조주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46:1).

 

교회연합은 오로지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신앙에서 출발합니다!

 

자신이 높아질 것만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연합은 처음부터 불가능하였습니다(9:45). 왜냐하면 저들은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가 큰가?”라는 힘의 논리에 있지 않고,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에 있는 것입니다(14:17). 이런 맥락에서 교회연합은 신비입니다. 교회연합이 신비인 이유는 바로 진정한 연합의 시작은 인간적인 관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연합의 신비는 삼위일체 안에 가려져 있습니다. 인간은 모이면 서로 높아지려고 하지만, 삼위일체 안에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은 높낮이의 구별이 없으며 차별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인간이 되셨으며(1:14; 8:3), 예수님은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14:16; 2:33). 세 위격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동시에 세 위격이 됩니다. 거기에는 어떤 세속적인 크기의 기준이 없으며, 의무적인 연합도 아니고, 오로지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만이 드러날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 그 분명한 뜻이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영혼이 떠나가셨다고 요한은 증거 하였습니다(19:30). 제자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사역의 완성은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사망권세를 이기시는 것이었습니다. 죄 된 인간을 용서하시고 먼저 낮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피 흘려 대속하여 주심으로 우리와 연합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교회연합은 인간의 계획이나 모임에서 출발할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삼위일체 사랑에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연합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저 세상의 권세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에서만 연합이 가능함을 고백해야 합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능력 안에 거해야 하며 부활을 통한 영생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의 시작(1:1)이 되신 것처럼, 교회연합과 같은 선한 일의 시작도 우리에게 착한 일을 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고백하여야 합니다(1:6).

 

교회연합으로 세상에서 삼위일체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삼위일체의 사랑은 아직도 우리 안에서 불일 듯 역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달아 가기를 원하십니다(2:2).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는 피조물 세계 내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합니다. 교회의 연합이 이루어지게 되면,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죄악으로 말미암아 깨어진 관계들을 회복하여 나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하였습니다(1:24). 교회연합을 이루는 우리도 이 세상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당신의 고난, , 사랑으로만 감당할 수 있는 삼위일체의 흔적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성육신하시고 고난당하신 것처럼, 교회도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며 고난당하는 이들과 함께 서야 하는 것입니다. 저들에게 찾아가 교회연합으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분의 십자가 보혈로 상처가 치유되며 좌절과 고통이 부활로 극복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새 창조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치유되어야 할 고난의 흔적을 수없이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노숙자, 이주 노동자, 병에 신음하는 이들, 실직자, 노인, 가난한 이들, 그리고 고통당하는 자연... 이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옆에 세우신 바로 그 어린이와 같은 연약한 지체들입니다(9:48). 이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관심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 하신 것처럼 결국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축복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9:48).

 

교회연합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교회연합의 목적은 종교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 작은 교회의 모임도 아니며, 프로그램을 위한 행사도 아닙니다. 교회연합은 각 교회들이 지체들로서 예수님의 거룩한 몸을 이루는 것이며, 우리는 그 몸에서 또 다시 십자가의 흔적을 발견하고 부활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며,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확인합니다.

교회연합을 통하여 지극히 낮은 곳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 사랑을 세상에서 증거하며 승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와 사랑의 연합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감리교본부 출판국 강단과 목회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