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

 

인간은 우리들이 현재 호흡하고 있는 이 순간 외에는 알 수 없습니다. 과거의 역사도 기억을 통하여 또는 문서의 형태로 주어진 내용이 전달 된 내용이 전부이며 그나마 좀 더 확장된 개념으로 공동체 속에서 문화적 요소들이 전하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를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현재의 역사적 인식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현재는 무엇인가요? 현재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순간 순간적인 시간을 보내는 우리에게 현재라는 시간은 사실 매우 불안합니다. 비록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시간을 우리는 보유하고 있지만 이 현실은 확정되거나 구체적이지 못하고 임시적이기 때문에 불안정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현실 속에서 ‘현재’를 경험하지만 이 현재를 통하여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미래’는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미래는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의 일부분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이 개념은 전적으로 인간적인 기준입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아직’ 우리에게 온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과거의 경험을 재 구성하고 현재 속에서 과거로부터 얻은 어떤 소중한 가치들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지혜 외에는 대안이 없게 됩니다.

 

 

2. 불안한 현재이기에 윤리는 없습니다.

 

미래학자들의 연구 결과에도 나타나듯이 미래는 불확정한 시대입니다. 정치적 대안을 통하여 이념적 대립과 분쟁을 극복할 평화주의적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만 이 땅에서 전쟁과 폭력은 사라지고 있지 않습니다. 경제적 대안을 통하여 더 나은 사회복지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지만 결과는 빈부의 격차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요소들을 해소하고 상생과 배려의 인권문화를 계획하지만 성과 인종, 계급과 문화적 차이는 ‘차별’로 이어지고 사회적 소외는 그 골이 더욱 깊어가 있습니다. 과학의 진보를 통하여 무지갯빛 미래사회를 꿈꾸지만 오히려 생태환경과 인간성은 점점 황폐하여지고 있습니다. 역사가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문화는 과거보다 더 못하게 퇴보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끊임없는 자살과 폭력, 소외와 좌절의 경험입니다. 재화의 크기로 인격을 대치하고 사회의 지위 계급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내면세계 보다는 외모를 더 중시하고 정신세계보다는 임시적이고 찰나적인 지식으로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미디어를 통하여 쏟아지는 성적 음란물은 남녀 간의 성숙한 사랑을 통한 가정의 도덕적 규범이 아닌 무책임한 성적 쾌락으로 치닫게 합니다. 수 많은 캐릭터를 잔인하게 죽이도록 이끄는 게임은 인간을 ‘전쟁의 용사들’로 키우며 영혼을 파괴합니다. 넘쳐나는 맛 집 프로그램은 인간이 소비하여야 할 음식에 대한 감사를 잊게 하고 배가 터지는 것도 잊어버리는 맛의 욕망만 극대화 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 세계는 이와 같이 진정한 평화가 없는 불안한 사회인 것입니다. 욕망만 극대화하지만 참된 만족을 구할 수 없기에 더욱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3. 미래는 없습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인간 세상에 대하여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인간’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모든 것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유혹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배신한 결과는 너무나 참담합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생령(창 2:7)이었지만 죄를 지은 이후에는 인간은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 육신’(창 6:3)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축복의 땅인 에덴동산으로 부터 추방당하게 됩니다. 이는 너무나 큰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지으시면서 당신이 만드신 것들을 질서가운데 두셨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질서를 어긴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평생을 방황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공간’을 잃게 된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다른 데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죽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창 3:19) 즉 공간의 상실과 더불어 시간도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영원하신 하나님과 거하며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갈 수 있었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공간과 시간을 다 잃게 되었습니다. 공간을 잃음으로 세상 속에서 방황하며 살고 시간을 잃음으로 흙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미래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하고 죄 때문에 미래도 빼앗기고 늘 불안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라는 시간은 인간에게 없으며 미래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4. 잃어버린 공간의 회복과 미래 교회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은 탕자와 같이 끊임없이 방황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상실한 공간을 회복하여 주시기 위하여 다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을 걸으시면서 우리들에게 복음을 주셨으며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악 된 세상에 오셔서 인간이 상실한 공간을 회복하시고 역사의 중심이 되신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이 되신 주님은 우리에게 교회라는 공간의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교회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바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이기시고(요 16:33) 우리를 위한 구세주 되심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사명은 바로 이 교회가 세상의 한 가운데 주님의 십자가와 함께 서있으며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십자가를 지고 교회를 한 몸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5. 잃어버린 시간의 회복과 교회의 미래

 

하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의 중심이 되셨으며 우리에게 세상을 맡겨주셨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이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 하신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인간이 타락함으로 공간을 잃어버림으로서 방황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다시 허락하셨습니다. 공간의 회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하나님은 공간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타락하여 죽음에 이름으로서 ‘시간’을 잃어버렸을 때 영생의 축복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이는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회복하여 주심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생명의 축복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미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연장이 아닙니다. 교회는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는 것이며 죽음을 넘어서는 영생을 세상에 알림으로서 미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의 현실을 분석하여 대안을 내 놓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죄악 된 세상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을 세상의 주권자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시며 세상의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만이 교회의 미래를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6. 성령세례와 성만찬을 통한 교회의 미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시고 또한 보혜사 성령으로 현재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따라서 현재는 하나님의 시간이며 성령이 임재하시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개신교 전통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부탁하신 명령을 가지고 세상의 공간과 시간을 돌파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 두 가지 핵심적인 요소는 성령세례와 성만찬입니다. 세례는 주님의 지상명령으로서 복음이 전파되는 결과이며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교회와 세상의 연합입니다.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며’ 나아가야 합니다.(마 28:19) 예수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통하여 온 세계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을 때에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행 2:38)

 

성령을 받은 교회 공동체만이 죄악 된 세상과 인간의 죽음을 돌파하며 나아갑니다. 만일 성령의 능력이 없다면 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회복하여 주실 때 우리는 미래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합니다.(행 4:31) 성령에 매임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으로 인도받게 됩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은 교회를 보살피시며 당신의 백성을 생명으로 인도하여 내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미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코이노니아 공동체를 통하여 그 사명을 세상에서 수행하여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만찬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만찬을 통하여 떡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포도주를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언약의 피를 기억합니다. 이 성만찬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한 몸의 ‘언약공동체’로서 세상을 이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떡은 하나이면서 많은 우리가 한 몸인 것처럼 우리는 생명의 떡에 참여한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잔에 참여함으로서 우리는 축복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만찬을 통하여 현재에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주님이 오실 때 까지 전하는 사명을 가진 것입니다.(고전 11:23) 이와 같이 교회의 미래는 성령세례 공동체와 성만찬의 공동체를 통하여 지속될 수 있습니다.

 

 

7. 교회의 미래는 하나님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하나님만이 미래의 주인이십니다. 현대의 인간은 있지도 않은 미래를 위하여 늘 걱정하고 살아갑니다. 재물 때문에 근심합니다. 생명 때문에 늘 걱정합니다. 앞으로 일어나 장래의 일에 늘 두려워합니다. 평화가 없어 허망한 것에 영혼을 팔아넘깁니다. 이러한 세상을 가리켜 성·어거스틴은 ‘불안’과 ‘불안정’이라고 정의내린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 유일한 가능성이란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떠한 것도 인간에게 평화를 줄 수 없기에 우리는 방패와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불안 속에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히 12:27)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는 흔들립니다. 그러나 말씀은 영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생은 우리에게 주신 참된 약속입니다. 교회의 미래는 시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에 있습니다. 교회의 미래는 제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에 있습니다. 교회의 미래는 사람에 있지 않고 성령을 받아 거듭난 믿음의 백성에 있습니다. 교회의 미래는 인류의 청사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인간되심을 기억하고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는 성도의 교제에 있는 것입니다.

 

 

8. 결론: 미래의 우상을 깨뜨리고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윤리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운명이 순례자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처 없이 방황하여 살아가야 할 인간의 참 모습입니다. 인간은 세상에서 자신의 근원인 흙을 갈며 평생 고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죄 된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사람들은 미래에 투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육과 재물, 그리고 생명을 미래에 담보합니다. 그것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우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은 우리가 기대한 것 그 어느 것도 미래를 보장하여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시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 공동체의 참된 윤리적 과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이 발에 등이 되며 길에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시 119:105)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지음을 받았기에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중심에 서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교회도 세상 한 가운데 서 있음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당신의 교회에 우리 주님은 성령세례를 약속하셨으며 한 몸의 공동체를 세워주셨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죽음의 시간이 정지되고 영생의 시간이 시작이 될 것입니다. 성만찬이 이루어지는 곳마다 죄로 깨어진 인간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교회가 미래입니다. 교회의 미래는 세상의 시간에 있지 않습니다. 복음과 전도가 이 세상을 침투하며 나아갈 때 죽었던 과거와 불안한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새롭게 우리에게 드러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영원한 현재이면서 영원한 미래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영생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의 성령 안에서 공간과 시간을 회복한 교회 공동체는 비로소 장래의 일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장래를 드러내시며(욜 2:28) 장래를 우리에게 맡기십니다.(롬 8:38) 장래의 모든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십니다.(살전 1:10) 우리가 이와 같이 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노력하는 영적인 열매는 좋은 신앙의 터(윤리적 터)를 쌓아서 참된 생명을 취하기 위함입니다.(딤전 6:19)

 

이 땅에서 시간과 공간을 회복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세상의 헛된 것을 쫒으며 살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구원하사 귀한 교회와 말씀을 늘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아는 신앙의 지식까지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빛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