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총회주일 설교문

말씀: 사도행전 10장 9절-23절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10차 총회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라는 주제로 올해 10월 부산에서 개최된다. 100여 년 전에 태동한 에큐메니컬운동은 사람이 사는 ‘온 세상 안에서(oikoumene)’ 세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신앙일치 운동이었다.

 

지금까지의 에큐메니컬운동은 각 총회의 주제에서도 나타나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학을 중심으로 교회일치와 세계의 평화에 그 중심을 두었다. 그러나 에큐메니컬 진영과 이를 반대하는 진영 사이에서 성서해석의 차이와 다원주의의 수용문제, 종교 간의 대화문제, 그리고 선교신학의 관점 차이로 교회 내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한국 교회는 부산 WCC총회를 준비하면서 교회가 직면한 이중적 사명을 새롭게 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교회와 사회 안팎의 요청에 대한 기독교 갱신과, 또 다른 하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독교의 생명력, 즉 사회적 성화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서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진정한 갱신과 사회적 성화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주 WCC 총회주일 설교는 사도행전 10장에 나타나는 베드로의 환상을 통하여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에큐메니컬 정신을 되짚어보고 하나님의 교회가 일치하여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교회의 갱신은 배고픈 기도로 시작된다.(행10:9-11)

 

사도행전 10장의 본문에는 베드로를 통한 고넬료 가정의 구원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베드로는 엄격한 유대주의자로서 기도하는 일에도 이 원칙을 지켰다. 지붕에 올라가서 베드로가 기도하던 시간은 정오 무렵이었는데, 마침 배고픈 그에게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음식냄새는 그의 시장기를 더욱 더 자극하였을 것이다. 기도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배고픔을 사용하여 당신의 뜻을 알려주셨다. 이 배고픈 인간의 한계상황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시작하신 것이다. 즉, 고넬료 가정의 ‘구원’을 계획하신 것이다.

 

‘배고픔’, 이것은 인간이 처한 가장 원초적인 실존의 상황이다. 태초의 원죄도 먹지 말아야 할 열매 선악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인간이 평생 땀을 흘리며 노동의 수고를 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도 바로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최근 한국 영화관객들을 눈물의 감동으로 몰아넣은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장발장 이야기도 조카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빵 한 조각’이 중요한 소재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굶주림의 문제가 해결되면, 세상은 평화로워 질 것인가? 빵의 문제가 해결되면,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문제가 해결된 것인가? 병들어가는 지구의 모습을 보라! 오염되어가는 물과 공기, 썩어져가는 땅, 개발은 있지만 문명의 진보는 없고, 과학은 있지만 정신은 없으며, 상품의 세계화는 있지만 사람의 소통은 없는 이 땅에 우리의 굶주린 기도가 필요하다. 그동안 인간은 빵을 위하여 수고하였고, 더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그 모든 목적이 빵 자체가 아니라 생명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왜 그리 쉽게 잊어왔는지! 빵을 미끼로 땅을 훼손하였고, 빵을 이용하여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였으며, 빵을 무기로 정신과 영혼을 팔아버리지는 않았는지?

 

성경은 인간의 한계상황을 육신의 배고픔에 국한하지 않는다. 인간의 굶주림이란 하나님이 없는 영적인 상태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음은 결국 인간의 결핍인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폭력, 그리고 인종분쟁과 사회적 갈등의 이면에는 빵의 문제로 해결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 없는 ‘영적인 굶주림’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하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배고픈 기도를 해야만 한다. 배고픈 기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이 가난한 영적 상태에서 가슴을 찢고,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이다. 자신이 가난함과 헐벗음, 그리고 상하게 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다.

 

WCC총회는 그냥 회의가 아니다! 점잔을 빼는 탁상공론이 아니다. 종교계의 실세를 확인하는 교회정치도 아니다. 세계의 배고픔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오는 이웃들의 영적인 갈급함을 들을 수 있는 빈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세상에서 고통 받는 우리 이웃들의 굶주림에 함께 배고파하며, 저들의 신음소리에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상황을 함께 고백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되돌아가고자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모이는 것이다. 이 세계가 영적인 굶주림 속에서 평화를 갈구하고, 인권을 되찾으며, 사랑을 확인하고자 모이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상황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다시 인정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받고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2. 보자기 안에는 차별이 없다!(행10:12-16)

 

시장기를 무릅쓰고 기도하던 베드로는 환상을 보게 된다. 하늘이 열리며 큰 보자기 안에 땅에 있는 각종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가득하였다. 거기에는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이 섞여있었다. 베드로와 같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유대 음식법의 준수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그들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누구인지 결정된다고 믿었다. 베드로도 이러한 유대의 음식법을 중요하게 여겨, 그 율례를 지키는 것이 스스로 이방인과 구별되는 거룩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본문 외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갈 2:11-14).

 

점심시간이 되어서 배가 고픈 베드로가 기도 중에 무의식적으로 구한 것은 먹을 만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환상을 통하여 부정한 짐승들을 잡아먹으라는 천사의 지시를 받았다. 먹기를 거절했던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베드로는 그 의미를 파악하고, 결국 이방인인 고넬료의 가정에 갔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정하게 하셨음을 깨달았고(행 10:15), 나아가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한계상황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 대한 구원사역을 펼쳐 나가신다. 빵의 문제를 넘어서 영적인 문제를 보여주신다. 영적인 굶주림은 자신의 구원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웃의 구원으로 연결이 된다. 보자기 안에는 먹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었다. 보자기는 우주를 표현하는 것이며, 복음이 선포되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사방에서 불러 모으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전도자의 개인적 취향이나 편견에 제한되지 않는다.

 

이 보자기 안에는 인간적인 차별이 없다. 하나님의 피조물로 가득할 뿐이다. 인종의 차별과 문화의 편견이 없는 하나님의 보자기는 궁극적으로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구원하실 모든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이다(마28:19).

 

WCC총회를 통하여 확인하는 ‘에큐메니컬’ 정신은 헬라어로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의미는 ‘만물이 살고 있는 온누리’로서 ‘전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지으신 전 세계와 모든 교회 안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모세의 법을 주장하였던 베드로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새롭게 깨닫고, 자신의 편견을 내려놓았다.

 

이번 부산 WCC총회를 통하여 모든 교회는 기득권과 자기주장을 겸허히 내려놓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WCC총회는 거룩하게 구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불러주신 소명에 대한 감사와 헌신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들려야 할 것이며, 하나님이 위탁하신 사명만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오는 우리 이웃들에 대한 모든 편견도 내려놓고, 한 형제 자매됨을 고백하여야 할 것이다.

 

3. 함께 가라!(행10:17-23)

 

환상 중에 베드로에게 나타난 보자기 안에는 모든 짐승들이 들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이 짐승들을 ‘잡아먹어라’는 음성을 베드로는 들었다. 베드로는 이 환상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있던 중 성령의 말씀을 통하여 그 뜻을 깨닫게 되고, 자신을 찾고 있던 두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갔다. 그리고 그는 복음을 고넬료 가정에 전했다.

 

하나님은 육신의 배고픔이라는 한계 상황에 있던 베드로의 약함을 통하여 구원의 비밀을 드러내셨으며, 베드로가 가진 환상에 대한 의문을 깨닫게 해 주셨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남은 것이 있다면, 자기를 찾으러 온 낮선 이방인들을 따라가서 복음을 전하는 과감한 결단과 희생뿐이었다.

 

베드로는 환상을 통한 영적 체험을 무시할 수 있었다. 제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유대인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종교적인 특권의식으로 이방인을 멸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씀에 순종하였다. 자신의 발을 종교적 울타리 안에서 밖으로 내디뎠다. 세상으로 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곧 자기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몸을 세상의 제물로 희생하셨다. 예수님은 세상 한 가운데 오셔서 우리에게 먹을 음료와 떡이 되어 주셨다. 그의 살과 피는 우리를 위하여 주신 영적 양식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행동은 교리나 기도문, 그리고 환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어나서 함께 가는 순종적 행동이 없이는 신앙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은 우리를 마침내 ‘제자됨’으로 끌어낸다.

 

이번 WCC 총회는 세 가지의 부제를 정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였다. 그것은 첫째, ‘믿음 안에서 함께 누리는 생명: 교회 일치와 선교(Life Together in Faith: Unity and Mission)’, 둘째, ‘소망 안에서 함께 누리는 생명: 세계의 정의, 평화, 화해(Life Together in Hope: Justice, Peace and Reconciliation in the world)’, 그리고 셋째, ‘사랑 안에서 함께 누리는 생명: 공동의 미래 (Life Together in Love: a Common Future)’이다.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을 통하여 이룩하여 나갈 교회일치와 세계 평화, 그리고 상생의 미래가 단지 희망사항으로 끝나지 않기 위하여서는 행동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향하여 자신의 편견을 벗어버리고, 내가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공동의 짐을 함께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사도 바울은 자신의 편견을 내려놓는 아픔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유대인과 차별을 두지 않고,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하였다(골1:24). 우리도 우리를 기다리는 저 문밖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따라 나서야 한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를 요청하는 저 세상 속을 향하여 전진하여야 한다.

 

4. 우리도 환상을 본다!

 

1910년 스코트랜드(Scotland)의 에딘버러(Edinburgh)에서 있었던 세계선교대회를 기점으로 시작된 에큐메니컬 운동은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의 창설 이후, ‘교회의 일치’ 운동을 전개하여왔다. 이번 부산에서 열리는 WCC 총회에 성령의 임재를 기대해 본다. 생명의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고 정의와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는 환상을 보아야 한다. 이 세상의 갈등과 폭력, 차별과 소외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하며, 함께 평화로운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환상을 보아야한다. 변화된 우리를 통해 만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환상을, 우리를 사용하사 ‘죽임’의 세상을 ‘살림’의 공동체로 바꾸실 환상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성취는 우리의 영적인 갈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리고 세상적 편견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의 순종이 갱신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시작하시는 영적운동은 당신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살리는 축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차별을 버리고, 함께 복음전파의 짐을 나누어 질 때, 교회의 일치와 연합이 시작될 것이다. 부산 WCC총회가 하나님이 시작하시는 영적운동이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