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부터 두 주간에 걸쳐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WCC 10차 부산 총회를 통하여 저는 전국에서 모인 150여명의 신학대학원 학생들과 30여분의 타 신학대학교 교수님들과 매우 뜻 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신학연구원(KETTI, Korean Ecumenical Theological Institute)이란 신학프로그램은 WCC 총회 기간 중 주최국의 언어로 이 대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길을 학생들에게 열어주었습니다. 총회 전체 행사는 영어중심으로 진행되었지만 학생들은 언어를 넘어서 다양한 회의와 주제발표에 참석하여 신학적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실천의 장을 전문화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첫 열린 기도회(opening prayer)’부터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절망하고 고통당하는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외침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고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할 수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북반구 중심의 선교, 즉 물질로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선교로부터 이 주변화된 남반구의 크리스천 스스로가 선교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입장이 이번 총회를 통하여 부각된 사안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고통의 원인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은 결국 무역 불균형과, 전쟁, 환경파괴를 만들어 내었고 이 속에서 약소국의 여성과 어린이들, 노인들은 더욱 주변인(the marginal)이 되어서 괴로움을 더해만 가는 현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변화되고 소수화된 이 지구상의 소외는 사실 중심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심이 있기에 주변이 있기 마련인데 아쉬운 점은 총회기간 중, 이 중심의 잘못에 대한 회개와 인식의 전환이 매우 미약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중심의 해체, 즉 중심의 변화가 없이 주변의 변화를 촉구하는 변화는 매우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아시아권과 아프리카권의 지도자들DL 중심의 잘못을 지적하고 연대를 호소하는 소리는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였습니다.

 

WCC 총회 기간 내내 전 세계 공동체의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고통의 소리는 단지 아우성과 외침으로 끝나는 것인가?”

하나님은 세상의 부정의에 대하여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나는 이 고통의 소리에 어떻게 동참하여야 하는가?”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동참하시는 방법은 바로 인간의 고통을 들으시고 이에 응답하셨습니다. 아벨의 고통소리를 들으셨으며 믿음의 조상들의 기도 소리를 들으셨고 애굽에서 고통당하는 히브리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습니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압제받는 이들을 대변하셨으며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는 그 어떤 세상의 권력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또한 가난한 이들, 병든 자들, 여인들, 어린이들의 소리에 잠잠하지 않으셨습니다.

 

WCC 총회에서 들었던 하나님께 드리는 인간의 기도는 바로 이 고난의 소리를 대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이들과 늘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편이 늘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문득 이 지구의 중심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지구의 중심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곳은 차라리 아파하는 곳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은가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슬퍼하는 곳, 괴로워하는 곳, 고난당하는 곳, 소외된 곳,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 그 곳에 주님은 항상 계십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성서의 언약이며 우리에게는 축복입니다.

 

우리 몸의 중심도 어디겠습니까? 그곳은 머리도 심장도 배꼽도 아닌 바로 아픈 곳이 아닐까요. 우리 몸의 조그만 아픔에도 온 몸은 함께 힘들어하고 괴로워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의 중심은 어디겠습니까? 바로 힘들어하는 지체가 중심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는 우리가 이세상의 아픔에 동참할 때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그마한 신음에도 응답하시며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고통에 동참하시며 평화의 사도가 되게 하시는 제자의 부름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