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디아코니아에 대한 문서들은 1925년 스톡홀름, 1966년 스완위크, 1986년 라나카 선언, 1987년 엘 에스코리알 세계봉사대회에서 채택되었으면 소개할 아래의 디아코니아에 관한 문서는 201262-6일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렸던 WCC의 세 가지 관련 프로그램의 영문 내용을 요약 작성되었다. 당시 세 가지 관련 프로그램은 각각 정의와 디아코니아’, ‘공정과 포괄적 공동체’, 그리고 선교와 복음에 관한 것이었다.

 

디아코니아는 WCC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일치, 증언, 그리고 봉사에 있어서 봉사의 영역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디아코니아에 신학적 숙고는 상황과 경험을 고려하는 측면에서 의도적으로 연역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류 사회에서 주변화 된 사람들에 대한 디아코니아는 대체로 8개 영역으로 나누어 질 수 있는데 그것은 (1) 현 신자유주의 연관된 부정의와 조직화, (2) 기후변화와 그 충격적인 결과, (2) 전쟁과 분쟁 그리고 파괴, (3) 외상적인 정신적 충격과 깨어진 관계들, (4) 배타적인 종교주의와 인종주의로 야기되는 공동체의 붕괴, (5)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강탈과 추방, (6) 여성과 어린이, 장애인, 그리고 노인들에 대한 폭력, (7) 영양실조와 질병, HIV, AIDS 유행병, (8) 소수인종과 소수종교, 원주민, 흑인 후예 부락민, 여러 가지 이유로 차별을 경험하는 남아시아의 억압받는 사람들과 그 외 사람들이다.

 

2012년 스리랑카 디아코니아 문서는 당시 오래된 전쟁과 갈등으로 치유와 희망을 열망하던 스리랑카의 NCC가 주도하여 교회의 증언을 주도하였는데 그 입장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디아코니아를 지속적인 하나님의 선교에 교회가 참여하는 주요 방식이라는 점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때 교회는 배타적이거나 내면적인 것만 추구하는 종교적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에 참여하는 소명이 있다. 아울러 디아코니아를 제도적인 형태로 모양새를 만들어가는 공동적인 경향에 부응한다.

 

2. 디아코니아는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돌보는 전통적인 관점을 재조명하여 사람에 보다 관심을 가지되 덜 자원에 집중하는 형태의 디아코니아가 되도록 하여 생색만 내는 중재보다는 촉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

 

3. 지금까지의 디아코니아가 지리적으로 북반구 교회의 관점과 우선순위에 의하여 형성되었기에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인 면에서 소수자이며 주변화 되고 그리고 적대적인 환경에 처하여 생존을 위하여 극도의 곤란을 경험하는 남반구의 입장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위와 같은 입장이 강조되는 신학적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0: 21).

 

1. 하나님의 선교는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의 실현에 관한 것이다. 이 세상의 비전에는 이사야서 6517-25절의 말씀과 연관이 된다.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21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22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새 하늘과 새 땅(계시록 21:1)에 대한 종말론적인 희망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 재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일하도록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다.

 

2. 세례로 하나 되도록 부르심을 받고 성령에 의하여 인도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교회 자체로서, 선포로서, 그리고 봉사로서 이 선교에 참여한다. 이런 관점에서 디아코니아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것을 증거 하면서 공동체로서 신앙과 소망을 실현하여 나가는 방식인 것이다.

 

3. 디아코니아를 통하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나님의 목적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한다. 디아코니아 안에서 교회는 섬김을 받으심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마가복음 10:45) 종 되신 주님의 방식을 따른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지배 세력을 넘어서는 봉사의 능력으로 부르심을 받아 모두를 위한 생명이 되도록 한다.

 

4. 교회는 사회 선교적 차원에서 개인과 집단적인 차원뿐만이 아니라 지역과 더 큰 영역에서 증인의 역할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는 예배와 말씀의 선포, 자선과 방문(히브리서 13:1-3), 그리고 공적인 증인됨과 지지를 통하여 교회됨의 다양한 표현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히 디아코니아는 돌봄과 구조, 봉사 뿐 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억압적 구조와 조직에 뿌리를 둔 부정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죽음을 불러오는 제국적인 치명적 권력과 직면하게 될 때 정의를 위한 지속적인 행동은 생명의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과 충성에 의하여 유지될 수 있다.

 

5. 모든 지역-정치적인 그리고 사회 경제적인 상황에서 모든 기독교 공동체는 사회봉사의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약속을 확고하게 믿는 봉사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은총을 증거 한다. 이 봉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편협한 이기주의와 종교적 정쟁을 극복하여 정의와 평화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6. 디아코니아는 전통적인 봉사의 방식, , 수혜자가 되든지 아니면 후견인이 되는 방식을 넘어서 전적인 동참을 요구하며 정의와 경제적 개발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제도적 구조와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한다.

 

7. 디아코니아는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면서 불안 속에서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역동적이며 상호관련 적이고 그리고 항상 준비되어있는 봉사로서 회중과 교회를 망라하여 지방과 지역, 그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8. 많은 경우 디아코니아는 제도나 가진 자가 베푸는 자비주의적인 봉사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디아코니아는 돌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나 가능성 또는 협력의 정신이 없이 단지 그들을 돌봄의 객체나 수혜자로 전락시킬 수 있다.

 

9. 디아코니아의 사회선교 프로그램은 위의 경우처럼 자칫하면 세계화나 소비주의 같은 경제적 행위나 이해관계에 얽혀서 바른 구제 프로그램이 되지 못하거나 개종에 연연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교가 올바르게 되기 이런 잘못된 행위들에 대한 회개를 통하여 신뢰와 정직을 회복하여야 한다.

 

10. 주변화 된 교회들은 비로 물질이나 재정이 충분하지 못하더라도 자신들의 삶과 일상의 저항을 통하여 디아코니아를 실천할 수 있다. 이들은 죄악에 대하여 공모하고 침묵하는 세상의 악에 대하여 증거 한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은 저들을 통하여 사회적 개혁이 절실함을 아시고 저들을 선택하신다.

 

11. 세상은 소외된 주변부를 불행과 무기력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성서는 오히려 하나님이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함께 하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억압과 상실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돌보시고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다(출애굽기 3:7-8).

 

12.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요한복음 1:46)”라는 비난은 세상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선교를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인 부분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디아코니아를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해주며, 병든 자를 치유하여 주시는 것이라고 선포하셨다(누가복음 4:16절 하반절). 예수 그리스도는 폭력적 세력을 부정하시고(누가복음 4:1-12) 권세의 지배적 논리에 동조하지 아니하셨으며(마가복음 10:45) 아울러 억압적인 종교적 전통 또한 반대하셨다(누가복음 11:37-54). 예수님의 디아코니아는 세상에서 내몰린 사람들의 삶을 회복하셨다(마가복음 3:1-6)

 

13. 소외된 이들은 늘 도움이 필요하거나 절망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부정의와 억압에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리고 자신들과 모두를 위하여 생명과 정의, 존엄성과, 인권을 위한 투쟁을 통하여 저항함으로서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서 장애인들은 특별한 감수성과 협력의 가치를 촉진하며, 흑인 후예 부락민, 남아시아의 차별당하는 사람들은 고통당하는 교회와 공동체로 하여금 저항하게 하며, 원주민들도 자신들의 처지도 경각에 달려있으면서도 상호협력을 촉진하게 한다. 또한 배움의 기회를 상실한 청년들도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박탈한 정책에 대하여 저항하며 이주 노동자들도 정치적 제도에 대항하여 인권을 회복한다. 이러한 모든 정신은 결국 디아코니아가 하나님의 오이쿠메네(oikoumene)를 실현하는 것이다.

 

14. 디아코니아는 주변화 된 사람들에게 붙은 꼬리표처럼 사회조직이나 제도의 희생자에 머무르지 않고 그러한 사회 구조의 파괴적이며 비인간적인 권력을 인식하는데 까지 나아가서 세상을 바꾸어 주변화 된 사람들의 인권과 능력을 정당화하여야 한다. 이는 성, 인종, 피부, 카스트, 연령, 장애, 성 지향성, 그리고 경제와 문화적 전체 영역에 걸쳐 디아코니아가 펼쳐져야 한다.

 

15. 전통적인 교회가 취하여온 사회봉사의 모델을 바꾸어야 할 시기에 있다. 이는 주변화 된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디아코니아 운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디아코니아는 보다 포괄적이며 나눔과 변혁의 행동을 수반하게 된다. 변혁을 위한 디아코니아로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미가서 6:8)”을 들 수 있다.

 

16. 이렇게 될 때 디아코니아는 모든 이들을 위한 봉사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17. 성경은 동등하게 취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실제 상황에 대하여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디아코니아는 하나님이 사랑의 행위로서 사람들과 조직 그리고 문화를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18. 디아코니아는 사랑과 돌봄에 있어서 연민의 행동을 필요로 하지만 감상주의에 젖어서 실제 고통과 상실의 원인이 되는 세력들과 요인들과 맞닥뜨리고 변화시키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에베소서 6:12)”의 말씀처럼 희생자나 가해자들 다 치유하는 디아코니아가 되기 위하여서는 세상의 부정의에 대한 변혁과 치유가 동시에 요청되는 것이다.

 

19. 디아코니아는 또한 평화선한의도와 같은 애매모호한 용어로서 그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예레미야 6:14)”의 말씀처럼 거짓 평화를 구하지 말고 예언자적인 행동으로서 권력에 대하여 진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20. 현 시대에 있어서 디아코니아는 부당한 군사력이나 경제 권력에 대항하는 정치적 행동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잘못된 이민정책이나 환경정책에 반대하여야 한다.

 

21. 디아코니아는 가부장제, 인종주의, 차별주의, 외국인차별주의, 편파적이고 배제하는 관행들이 만연한 억압적인 문화들을 개혁하는데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문화에 대하여 방임하고 관행으로 방치한 것에 대하여 회개하여야 할 것이다.

 

22. 디아코니아는 위의 경우처럼 단지 악에 저항하거나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는 말씀처럼 변화를 촉구한다. 예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세상의 소금과 빛, 그리고 누룩(마태복음 5: 13, 14)이 되라고 하셨다.

 

디아코니아 운동을 구체적인 사회적 운동과 연관하여 제시하는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다.

 

1. 디아코니아를 지역의 작은 교회에서 실행하기 위하여

 

-사회, 정치, 경제적 현실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하며

-예배와 말씀을 통하여 디아코니아의 신학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지하여야 하고

-환경문제에 대하여 사람들이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운동을 추진하고

-가정과 공동체, 그리고 교회에서 여성들에 대한 학대와 폭력의 현실에 대하여 확고히 대처하며

-술과 마약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극복하게 하며

-친절하고 포괄적인 공동체를 지향하여 교회는 차별자유 구역으로서 그리고 안전과 희망의 성소가 되며

-상담, 중독, 교육, 고용, 성민감성에 대한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교회들 간 그리고 다른 신앙을 가진 공동체와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해소하는 협력과 연대를 신장한다.

 

2. 디아코니아를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 실행하기 위하여

 

-지역교회가 스스로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지속할 수 있도록 후원하며

-도시와 지역, 풍요와 빈곤, 그리고 이미 확고하게 설립된 교회와 과정 중에 있는 교회들 사이의 교량역할을 통하여 연대와 상호 책임을 도모하고

-교회 내 차별과 배타성을 타개하고 그리고 동질성만 강조하는 배타주의를 멈추는 캠페인을 벌이며

-HIV/AIDS, 장애, 가난, 식량, 안전, 환경 문제에 청지기의 역할을 다하고

-예언자적 사명을 가지고 주변화된 공동체의 정의와 인권에 앞장서고

-지역과 국가적 차원에서 풀뿌리적 운동을 교회간 연대하고 벌이며

-신학교육기관으로 하여금 디아코니아 교육을 확산하고

-목회자와 평신도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디아코니아 성경 교재를 만들고

-신앙이 다른 공동체와 교류할 수 있는 사회봉사활동을 벌인다.

 

3. 디아코니아를 WCC 차원과 국제기구들을 통하여 실행하기 위하여

 

-디아코니아를 교회를 대변하는 관점에서 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자발적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하여 필요한 건물이나 협력, 그리고 자원을 동원하여 주고

-차별과 주변화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공동체, 그리고 회중들과 함께 하고

-공격을 받고 추방당하고 강탈당한 희생자들을 위한 정의와 존엄성, 그리고 평화를 신장하고

-풀뿌리적 운동을 지원하며

-국제적인 사회봉사 기구들과 협조하여 교회의 협력과 상호동반책임을 신장하고

-다른 컨텍스트에서의 보다 창의적인 협력을 도모하기 위하여 교회 내 신학적 이해를 촉진하고

-이러한 일들에 있어서 변화를 추구하는데 발생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연대의 힘을 인식하여 모든 차원에서 그러한 연대의 표현을 가능하게 하고, 격려하고 신장한다.

 

디아코니아 운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성경의 말씀을 중심으로 예배와 봉사 그리고 교회의 일치를 신학적으로 연결하였다.

2. 물질주의의 북반구 중심적 선교를 보다 통전적인 인간 중심적인 선교로 회복하여야 한다는 입장이 부각되었다.

3. 디아코니아를 통전적으로 살펴보고 풀뿌리적인 차원에서 자생적인 운동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4. 아쉬운 점은 환경, 가정, 사회, 경제, 정치, 세계 공동체의 맥락에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문서가 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