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필자는 이전의 성직자 세금 납부 문제에 대하여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한 바 있다. 그것은 각각, 법적인 관점, 도덕적 관점, 그리고 신학적 관점이었으며 종교인 과세문제는 종교와 세금이 각각 도덕적 규범이 요구하는 사회질서 유지와 통합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특히 신학적 차원에서 종교의 자유는 순수한 종교적 목적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부과되는 기본권이지만, 영토를 근거로 한 근대국가의 형성에 있어서 국민의 주권과 안정을 보장하는 국가의 도움 없이 종교의 자유를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종교단체와 종교인의 지위가 국가에 의하여 보장되는 한, 세금은 국민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다하는 종교인에게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바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필자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한 국가는 종교인 과세라는 쟁점에 있어서도 그동안 국가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한 종교단체와 성직자의 존엄과 가치를 세금이라는 경제적 자대로 평가하지 말고 존중하여야 할 것임을 재차 강조하였다. 따라서 이 사안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의사소통의 과정과 수렴을 통하여 공익을 위한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국가와 종교가 함께 노력하여야 할 것을 촉구하였다.

필자는 이번 성직자 납세에 대한 신학적 고찰에서 종교개혁 전통에서 만인사제설종교적 양심의 관점에서 쟁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종교개혁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 질 수 있다는 하나님 중심의 정신에 근거한다. 따라서 당시의 절대적인 교황 독점권을 철폐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자유를 강조한 종교개혁정신은 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아무런 방해가 없이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는 만인사제라는 측면에서도 많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이 만인사제설은 자칫 개인의 신앙결단이 최고의 가치이며 이 땅에서 그 어떠한 가치도 개입할 수 없다는 독단적인 개념으로 잘 못 오해될 수 있다.

한편, ‘종교적 양심의 경우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에 동반되는 개인의 양심과 신념은 최고의 도덕적 수준이며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세속적 개념보다도 앞선다. 이 종교적 양심이 역사 속에서 사회를 개혁하고 교회의 부패를 바로잡는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양심이 자칫 개인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정당성을 외면하는 주관적 고집으로 비쳐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는 성직자 납세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 관점에서 만인사제설의 바른 뜻과 종교적 양심의 문제를 고찰하여 봄으로서 성직자의 납세는 이웃에 대한 책무이며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올바르게 져야하는 윤리임을 강조하겠다. 참고로 종교적 양심의 경우 필자는 이 글의 논지에 맞추어 헌재의 판례를 소개하고 주로 법과 양심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고찰하였음을 밝힌다. 추후 이러한 헌재의 입장이 개신교 신학적 전통에서 보는 신앙의 양심과 부합하는지 살펴볼 기회가 있으리라고 본다.

 

 

2. 만인 사제설

 

신앙의 개인주의적인 측면이 종교개혁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개혁을 통하여 나타난 개혁자들의 논점 핵심은 개인에 있기보다는 참된 교회와 올바른 성도의 교제에 있었다. 사실 모든 신앙인은 그 자신의 사제라는 만인 사제설의 개인주의적인 차원은 모든 신앙인이 그 이웃의 사제라는 뜻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 모든 사람은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신의 사제가 아니라 그의 이웃의 사제로서의 사제이다. 따라서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제이며,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안에서의 삶이고, 성도의 교제로서의 삶인 것이다. 신약 성서의 교회가 성도의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하였던 것처럼 종교 개혁 또한 기독교인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와 연관하여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사제의 올바른 의미는 특히 루터(Martin Luther)에 의하여 잘 나타나있다. 그는 독일 기독교 귀족들에게 고함에서 영적 기독교인과 세속적 기독교인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성직을 이해하였던 중세 교회를 비판하였다. 그는 사제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국가의 역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였다. 그에 따르면 정부의 지도자들, 즉 통치자는 하나님을 향해서는 참된 신뢰와 진지한 기도가 있어야하며, 시민을 향해서는 사랑과 그리스도인의 봉사가 있어야 하고, 보좌관과 관리들에 관해서 자유로운 판단과 이성을 지녀야 하고, 그리고 악행자들에 대해서는 절도 있는 엄정함과 확고함을 나타내야 한다고 보았다.

하나님이 세우신 정부의 관리들은 하나님이 임시로 세우신 질서이다. 마찬가지로 사제의 직도 영원한 것이 아니다. 사제나 감독, 그리고 교황이라고 할지라도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정부의 관리가 자신들의 일을 감당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머리되시며 모든 크리스천들은 주님이 주시는 직무를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제는 기독교왕국의 관리로 임명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섬기기 위한 직무를 감당하는 것이다.

루터는 또한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설명하였다. 루터가 말하는 믿음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를 향한 자신의 변화이며 사회에 대한 책임이었다. 그의 정의에 의하면 믿음이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에 따른 변화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믿음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고 창조적이며 활동적이고 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선한 일 들을 계속적으로 지속하게 한다.

 

믿음이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로 우리를 변화시키시며,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삶을 줍니다(1: 13). 믿음은 옛 아담을 없애고 우리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듭니다. 믿음은 우리의 마음과 영과 생각과 모든 힘들을 바꿉니다. 믿음으로 성령의 임재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야말로 살아있고 창조적이며 활동적이고 힘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선한 일 들을 계속적으로 하게 합니다. 믿음은 선한 일을 해야 될 것이냐고 묻지 않고, 오히려 누가 묻기 전에 선한 일들을 미리 하며 쉬지 않고 합니다. 누구든지 이러한 자세로 선한 일을 하지 않으면 불신자와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비록 무엇이 믿음이며 선행인지 모르면서도 믿음에 방해만 되며 믿음과 선행을 바라기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많은 말로 믿음과 선행에 대하여 늘어놓게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은총 안에 살아있는, 그리고 확고한 신뢰입니다. 그 믿음으로 수천 번을 죽게 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신뢰와 지식은 여러분들을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과의 관계에서 행복하고 담대하게 할 것입니다. 성령은 이러한 일들을 신앙을 통하여 가능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여러분은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기꺼이, 그리고 기쁨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을 섬기며 모든 일을 감수하고 그와 같은 은총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불에서 빛과 열을 분리할 수 없듯이, 믿음과 선행을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잘못된 생각을 조심하고 무익한 담론들을 멀리하고 자신을 스스로 지혜롭게 여겨 믿음과 선행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큰 바보인 그런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지키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 안에 믿음이 역사하도록 요청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무엇을 바라든지 말하든지 또는 하든지 여러분은 믿음이 없는 자들로 남게 될 것입니다.

 

루터가 강조하듯, 불에서 빛과 열을 분리할 수 없듯이, 바른 교회는 고백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교회 안의 것과 밖의 것으로 구분 할 수 없다. 바른 기도와 진정한 회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은 기독교가 회복하여야 할 종교개혁 신앙의 본질인 믿음과 관계가 있다. 가난에 대한 교회의 책임은 사회성원으로서 교회가 분담하여야 할 책임이다.

성직자의 세금납부는 종교개혁 정신에 비추어 만인사제설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 세금을 이웃에 대한 책무로 이해하는 것이다.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세금은 필수적이다. 대한민국 헌법 11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더군다나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밝히고 있다. 법의 평등은 신앙의 자유를 위한 실질적 조건이다. 그렇기에 세금을 통하여 국가의 발전에 참여하는 국민의 경제적 책임에 대하여서는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3. 정교분리와 종교개혁 정신: 종교적 양심이란 무엇인가?

 

정교분리는 대한민국 헌법202항에 명시된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조항에 근거한다. 정교분리는 종교의 자유, 국가의 헌법, 그리고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특수한 역사와 문화적 요소를 고려하여 해석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 조항은 종교를 국가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또는 특정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정교분리는 독립 헌법에 처음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일차적 목적은 미국이 영국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정교분리는1789년 미국권리장전의 수정헌법 제1조에 잘 나타나있다. “연방의회는 종교의 설립에 관여해서는 안 되며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지 못한다.” 이 내용은 국교설립의 반대와 종교행위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이 조항은 후에 1868년 수정헌법 14조에서 보강된다. “어떤 주도 합중국시민의 특권이나 면책권을 박탈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시행할 수 없다. 어느 주도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어떤 사람으로부터도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으며, 그 관할권 내에 있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법률에 따른 평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 이 조항은 구체적으로 연방의회로부터 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미국의 모든 시민은 국가로부터 구속받지 아니하는 신앙의 자유를 법적으로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교분리라는 법적 개념에 있어서 종교인의 신념과 양심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구체적으로 법의 관점에서 종교의 자유라는 개념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현재 한국사회의 쟁점인 성직자 세금문제에 있어서 이에 대한 성직자들의 종교적 신념과 연관이 되기 때문이다. 실례로 미국의 경우 양심적 병역거부에 나타나는 종교적 양심에 대한 판례를 살펴보면 종교의 자유또는 양심의 자유라는 개념을 통하여 정교분리의 개념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940년에 발표한 선택적 군사 훈련과 군사복무 시행령에서는 굳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교회 신도라는 것을 밝히지 않아도 되었고 다양한 해석의 차이가 있는 종교적 강령과 신념에 대한 이유만으로도 개인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준의 해석이 점점 광범위하게 되었고 이에 따른 탄원도 그 성격의 내용이 서로 다르게 되었다. 어떤 경우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개인의 양심의 문제로 본 반면 다른 경우는 신에 대한 신앙의 문제로 보기도 하였다. 따라서 미 의회에서는 1948년 이러한 해석상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조항을 내렸다. “양심적 병역 거부와 연관하여 종교적인 강령이나 신념은 인간적인 관계에서 파생되는 것보다 훨씬 월등한 신앙적 의무규정을 포함하는 지고의 존재(Supreme Being)와의 관계와 연관이 있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혹은 철학적인 관점이나 또는 단순한 개인적인 도덕적 신념이 아니다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1965년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 미합중국 대 시거’ (United States v. Seeger, 380 U. S. 163) 에서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이전의 해석은 단지 모든 종교를 포함하는 차원에서의 종교적 강령이나 신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었다고 보았다. 이 당시의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경우 하나님과 관련된 신앙이 과연 무엇인지 시험(test)하여야 한다고 대법원이 본 점이다. 이때의 대법원 판결은 신실하고 의미가 있는 자신의 신앙이 그 당사자의 삶을 이끌며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정통신앙과 유사한 신념으로 인정이 되면 그러한 사람은 확실히 병역의무 면제의 자격이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사용된 유사한 신념의 인정 여부에 대한 시험’(test)이란 신념의 내용에 관한 것 뿐 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 속에서 그 신념의 위치나 역할 혹은 기능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후 1970년 웰쉬 대 미합중국 (Welsh v. United States, 398 U. S. 340) 소송에서 미 대법원은 모든 전쟁에 대하여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법령해석에 의한 종교적인 항목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했는데 전쟁에 대한 반대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혹은 종교적인 신념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신념들은 전통적인 종교적 확신의 강한 토대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또한 만약에 개인의 양심이 순전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신념을 성실히 지킴에도 불구하고 시점에 상관없이 어느 형태의 전쟁에도 참여하는 것을 막는 양심의 의무로서 작용한다면 그러한 신념들은 그 개인의 삶에서 확실하게 전통적으로 종교적인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즉 하나님(God)을 믿는 신앙과 같은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개인의 신념은 그의 삶에 하나의 종교로서 기능하는 것이며 그와 같은 사람은 전통적인 종교적 확신에 의하여 전쟁을 양심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으로 사료되는바 미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법률 6(j) 조항의 종교적 양심적 거부자로 분류될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는 조항은 도덕적 윤리적 혹은 종교적인 신념에 의하여 유발된 양심이, 만일 그들이 전쟁 도구의 한 부분이 된다면, 더 이상 쉴 수도, 평화로울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병역을 면제하여 주는 것이다.

위의 미국 문헌이 우리에게 시사하여 주는 점은 양심병역의 문제를 처음에는 종교의 최고 원리인 하나님과 연관시킨 종교적 양심의 문제에 국한시켰다가 점차적으로 그 양심을 사회의 도덕과 윤리적인 틀 속에서 이해하고, 또한 병역거부자가 주장하는 전통적인 종교적 신앙체계와 사회의 신념체계가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시험(test)을 하고, 또한 그것을 존중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 거부에서 양심이란 (1) 종교적 양심과 사회 윤리와 도덕성의 연관을 통하여, ‘양심적 병역 거부의 문제를 개인의 사적인 문제로 보지 않고 국가가 개인의 종교적 양심을 존중하여 주는 법 장치가 필요성으로 나아갔다는 점과 (2) 동시에 종교적 신앙을 통한 병역의 문제를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하여 있는 역사적 전통과 연결하여 해석하였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 헌법재판소는 양심에 반한다는 이유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판결의 요지는 국가의 존립과 모든 자유의 전제조건은 국가안보임을 강조하는데 있었다. 종교적 양심에 대한 헌재의 판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양심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는 헌법상의 권리임에도 병역거부의 사안은 입법자의 입법에 의하여 인정되는 법률상의 권리이다.

(2) “헌법상 보호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을 말한다.” (헌재 1997. 3. 27. 96헌가11, 판례집 9-1, 245, 263; 2001. 8. 30. 99헌바92, 판례집 13-2, 174, 203; 2002. 4. 25. 98헌마425, 판례집 14-1, 351, 363). 여기서 헌재가 정의한 양심상의 결정이란 선과 악의 기준에 따른 모든 진지한 윤리적 결정으로서 구체적인 상황에서 개인이 이러한 결정을 자신을 구속하고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양심상의 심각한 갈등이 없이는 그에 반하여 행동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3) 양심의 자유가 보장하는 양심은 다수의 민주적 사고나 가치관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이다.

(4) 헌법 제19조의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에서 양심의 자유는 크게 양심형성의 내부영역과 형성된 양심을 실현하는 외부영역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내심의 자유인 양심형성의 자유와 양심적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하는 양심실현의 자유이다. “양심형성의 자유란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간섭이나 강제를 받지 않고 개인의 내심영역에서 양심을 형성하고 양심상의 결정을 내리는 자유를 말하고, 양심실현의 자유란 형성된 양심을 외부로 표명하고 양심에 따라 삶을 형성할 자유, 구체적으로는 양심을 표명하거나 또는 양심을 표명하도록 강요받지 아니할 자유(양심표명의 자유),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받지 아니할 자유(부작위에 의한 양심실현의 자유), 양심에 따른 행동을 할 자유(작위에 의한 양심실현의 자유)를 모두 포함한다.”

헌재의 판결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양심형성의 자유는 내심에 머무르는 한, 절대적으로 보호되는 기본권이지만, 양심실현의 자유는 양심적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만약 법질서에 위배되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면 법률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로 해석한 점이다.(헌재 1998. 7. 16. 96헌바35, 판례집 10-2, 159, 166 참조)

(5) 양심의 자유는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자유로서 실정법적 질서의 한 부분이며 기본권적 자유이기 때문에 법적자유이지 절대적이거나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자유가 아니다. 양심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의미는 법질서에 거부하는 자유의 권리를 부여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인의 양심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비이성적이거나 비윤리적 또는 반사회적일 수도 있으며 개인의 양심을 국가의 법질서보다 우위에 둘 경우 법질서의 해체 또는 국가공동체의 해체를 의미할 수 있다.

(6) 양심실현의 자유에 있어서도 양심의 자유와 헌법적 법익 및 국가의 법질서 사이의 조화 또는 법익형량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여기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수단의 적합성, 최소침해성등이 있다. 양심의 자유는 비례의 원칙을 통하여 공익과 교량하고 공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상대화 또는 왜곡되면 안 된다.

(7) 양심의 자유 보장은 “‘국가가 민주적 공동체의 다수결정과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하고자 하는 소수의 국민을 어떻게 배려하는가.’의 문제, 소수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관용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리고 국가가 자신의 존립과 법질서를 유지하면서도 또한 개인의 양심도 보호하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그러나 소수의 양심이 공익의 실현과 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 즉 평등의 문제를 야기하면서까지 보장될 수 없다.

(8) 결국 양심의 자유를 통한 개인의 인격발현과 인간의 존엄성실현을 위하여서 국가공동체가 보호해 줄 의무가 있으며 이것을 위한 광범위한 형성권을 가진다.

참고로 위와 같은 다수의 의견에 비하여 양심에 관한 소수의 의견을 간략하면 다음과 같다.

(1) 양심의 자유는 정신적 자유권 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인 기본권으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불가분의 관계이며 비록 양심을 형성하는 다양한 가치관이 중첩이 된다고 하여도 그 양심에 대한 판단은 개별적이야 한다.

(2) 내심의 양심이라고 할지라도 외부의 평가로 좌우되거나 고하가 가려져서는 안 되며 그 마음의 소리가 진지하다면 사회나 국가적 판단에 의하여서도 좌우될 수 없다.

(3)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의 경우에 있어서도 소수의 가치가 다수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예외나 특혜로 인식되어서는 안 되며 기본권의 차원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4) 헌법가치들이 갈등관계에 있을 때 입법자는 일방적인 헌법가치만을 실현하지 말고 각 헌법의 가치들이 공존하면서 최적의 상태로 실현되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5) 아울러 입법자는 양심의 내면적 자유뿐만이 아니라 양심실현의 자유 또한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가 실행될 수 있는 방안을 현실적으로 모색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다수 헌재 재판관들의 종교적 양심에 대한 견해는 종교보다는 내심의 자유에 대한 해석에 국한하고 있으며 소수만이 종교적 양심을 신의 소리또는 신의 가르침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종교상의 신념이나 종교교리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나 신념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사회적 파장에 대한 법의 해석과 기본권의 제한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의 판례에서 정교분리의 쟁점이 되는 종교적 신념과 자유의 개념을 성직자 납세문제와 연관하여 이론적으로 응용하여 정리하여 보면 아래와 같다.

(1) 성직자 세금에 대하여 종교인은 내면적 신념에 의하여 거부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양심에 반한 표현이나 행위를 강요받지 말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면적 양심에 의하여 형성된 신념은 기본권으로 보장되어야 하지만 만약 법질서를 파괴하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가 발생하면 법률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이다.

(2) 성직자 세금에 대한 법은 입법자에 의하여 형성되고 결정된다. 입법자는 소수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또는 특혜의 차원에서 보호하기 보다는 평등의 차원에서 헌법의 다양한 가치와 상이한 문제들을 조화롭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하여야 한다. 성직자 세금납부의 문제는 이러한 맥락에서 입법자는 국가발전의 분명한 목적 안에서 수단의 적합성, 최소침해성, 그리고 비례의 원칙을 고려하되 공익과 공공의 선을 위하여 법을 집행할 분명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3) 종교적 신념과 연관하여 개인의 양심은 종교적 목적의 행위와 국가의 질서와 법의 안정성 안에서 양심실현의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이며 절대기본권이다. 그러나 동시에 종교적 양심의 실현은 양심이 내면적으로 형성되는 기층 사회의 정치 사회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인격실현을 위하여 사회적 책무와 반드시 연관하여야 한다.

 

4. 결론: 성직자 납세와 정의론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성직자 납세의 문제는 종교개혁주의 전통의 만인사제설이나 주관적인 종교적 양심의 자유차원에서가 아닌 이웃에 대한 책임과 도덕적 규범의 차원에서 접근하여야 함을 살펴보았다. 따라서 책임과 규범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회 정의의 문제와 깊게 연관이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정의의 목표는 기본적 인권에 근거한 공동선이며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여야하기 때문이다.

존 롤즈(John Rawls)에 의하면 기본적 인권은 어떤 근본적인 철학적 학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의의 공동선적인 개념에 의하여 인도되는 질서 있는 정치사회의 최저기준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질서 있는 사회란 계층간 평화적이어야 하며 영역 내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도덕적인 의무와 책임을 져야하며 동시에 기본적 인권이 존중되는 정의론의 공동적인 구성이 필수적으로 선행 되어야 한다.

롤즈의 정의론 출발은 원초 상태(original position)를 가정하는 것인데 이 원초상태에서 사람들은 평등하고, 독립적이며,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특성에 대해서 모를 뿐만 아니라 특히 미래에 형성될 사회에서 자신이 차지하게 될 지위(역할, 이익, 향유수준)에 대해 모른다고 전제 된다 즉, 소위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을 상정하는 것이다.

롤즈가 주장하는 정의관에 있어서 평등한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사회 계약론에 있어서 자연 상태(state of nature)에 해당한다. 이 원초적 입장은 역사상 실재했던 상태로 생각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더욱이 문화적 원시 상태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일정한 정의관에 이르게 규정된 순수한 가상적 상황으로 이해되며 사람들이 함께 선택하게 될 가장 일반적인 것들 중의 하나로 시작된다. 즉 그것은 제도들에 관한 그 후의 모든 비판과 개혁을 규제하게 될 정의관의 제 1원칙들을 선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일단 정의관이 선택된 다음에는 그에 따라서 헌법이 선택되고 입법기관이 선택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이미 처음에 합의된 원칙들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롤즈의 정의론을 성직자 납세에 적용하면 납세의 의무란 각자만의 양심 안에서 자유롭게 행위 하는 결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국가 사회 속에서 자유와 권리에 수반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주체, 즉 자율적인 주체가 됨을 전제한다. 그리고 납세에 관한 개인의 원초적 입장은 구성원 사이에서 합의된 그 어떤 원칙도 정의로운 것이 되게끔 하는 공정한 절차를 설정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공정한 절차를 통하여 납세의 목적은 순수 절차적 정의를 유도하여 낼 것이다. 납세문제를 통하여 성원 간 불화하게 하는 사회적 여건을 정의롭게 하고, 또한 그들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도록 유혹하는 특수한 우연성의 결과들을 무효화시켜야지만 납세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결과를 얻으려면 당사자들이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속에 있어야 한다는 롤즈의 정의론은 성직자 납세에 관한 이론적인 접근으로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편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모든 가치들을 완벽하게 지배하지는 못하며 그 어떤 가치도 결코 완벽할 수는 없다. 사회의 그 어떤 지배적 가치라고 할지라도 언제나 권력에 의하여 이용당할 수 있기 때문에 각 가치들은 항상 공공 목적들을 위한 것으로 발전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올바른 공유 형식과 분배 형식, 그리고 교환 형식에 관한 실질적인 사회 제도들이 먼저 구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책무는 국가가 입법화하려는 어떤 사안들에 대하여 법의 목적과 공공선의 실현에 부합하는지 문제를 깊게 살피며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영적인 각성이 항상 필요하다.

종교단체와 종교인의 유일한 사명은 영혼을 위한 영적 짐을 지는 것이다. ‘세금의 짐도 져야만 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통합과 질서유지에 공헌하며 어려움을 서로 함께 나누는 이 아닌 따뜻한 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직자의 과세가 법의 형식을 넘어서서 이웃을 염려하고 함께 공감하는 성숙한 조세문화로 발전하기 위하여 신앙의 이 더욱 더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