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20161011

박광명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재미있을 것 같다는 거였다. 제목도 끌렸지만, 책상 위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서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셸리 케이건 교수님의 사진이 더 눈에 들어왔다. 어떤 책일지 기대하며 한 장 한 장 책을 넘겼는데, 내용 자체가 쉽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사고흐름이 대체적으로 논리정연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그대로 따라가며 읽을 수 있었다. 나와 다른 관점에서 죽음, 영혼을 바라보는 육신주의자의 글이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기회라 삼고 읽을 수 있었다. 나의 관점은 최대한 배제하고,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은 어떻게 주장하는지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먼저, 세이건 교수의 논지전개 방식이 대체적으로 개연성이 있고, 구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죽음이라는 엄청난 주제를 접근하는데 있어서 세이건 교수는 다양한 시도를 차근차근 해나간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현인들의 이야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죽음이라는 주제와 연관지어 볼 수 있는 영혼, 육체, 인격 등의 정확한 개념과 소멸가능성 등을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사실상 책의 전반부에는 이런 이야기들을 전개하느라 모든 지면을 다 쓰고, 실제적으로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책의 후반부다. 아무튼 세이건 교수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 나가며, 어려운 개념들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일상생활의 쉬운 케이스들을 접목시킨다.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가 쉽도록 이끈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그의 설명하는 방식에 공감했고, 놀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어떤 전개들은 근거가 미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208페이지에 보면, 나폴레옹의 인격을 물려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완벽하게 나폴레옹의 인격을 물려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인격 이론에 따르면 나폴레옹이라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일 경우 문제가 달라지고, 자신이 나폴레옹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두 사람 모두 나폴레옹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이건 교수는 인격 이론을 포기할 수 있는 근거로 이 사례를 든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인격과 어떤 사람의 인격이 100% 같을 가능성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육체주의의 사고를 견지하고 있는 세이건 교수가 자신과 다른 의견들을 논박하기 위해서 억지로 짜맞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에 사는 어떤 사람도 동일한 인격을 소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살아온 환경, 들었던 말, 가족관계, 친구관계 등이 동일한 사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서 나폴레옹의 인격을 물려 받았다고 가정한 두 사람도, 실제로는 나폴레옹의 인격과 유사한 면이 있는 사람일 뿐 결코 동일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이론적인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키고, 인격이론 폐기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넌센스일 것이다. 마치 이것은 친구에게 너가 오늘 자고 일어났을 때, 너가 아니라 나의 사고를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나의 사고가 아닌 다른 사고로 너의 몸을 움직이면, 너는 오늘 죽을 수도 있다. 신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사고대로 움직여라라고 하면 어떨까. 친구의 떨떠름한 표정이 생각날 뿐이다. 이처럼,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그것이 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전개에도 기본적으로는 믿음이라는 것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세상은 어떤 것을 믿느냐의 시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세이건 교수는 기본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질문들을 놓고, 정반대의 답이 나올 수 있는 양측의 가능성들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한다. 이러한 전개는 양측의 논리를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한 면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가 두 가지 가능성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논지를 설득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객관적이라는 용어로 표현될 수 있는 방식을 택하는 것처럼 보여도, 상당히 치우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논의가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는 나는 영혼을 믿지 않기에 영혼 관점이 차이를 드러내는 사례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라는 말을 한다. 이런 현상들을 보고, 나는 세이건 교수가 마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고서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과 마찬가지로, 영혼이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없을 것을 믿는 또 다른 종류의 신앙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 것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믿을만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알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 영혼은 존재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 가는데 있어서 저자는 치고 빠지기 식의 주장을 전개한다. 저자는 영혼이 없다는 쪽에 서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결정론에 지배를 받는 존재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다는 이원론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에 대한 근거는 지면이 부족하다는 이유로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한 사례만이라도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러지 않았다. 다만, 이원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주장을 함께 내세우면서 말이다.

 

아직 후반부가 남아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나와 다른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고, 생각해 볼 점도 많은 책인 것 같다. 죽음이란 무엇인지 나도 익숙한 환경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