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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두가지 영상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현대 예배에서의 현대 음악 논란

 

Th.M 2/4학기 교회사전공

201220024 신요성

 

         현대 예배에서 현대음악의 사용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논란이 많아왔다. 이는 비단 현대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러한 논쟁은 개신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이전부터 음악에 대한 논쟁은 카톨릭에서도 존재 하였다. 처음에 교회에서 연주된 음악은 단선율의 음악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음악은 성장해 나갔고 12세기에는 단선율 위나 아래에 성부를 추가로 쌓으면서 복선율이 등장을 하였다. 솔즈베리의 존은 이러한 복선율 음악에 대하여 음란한 노랫소리와 이상하게 멋 부리는 태도로 노래부르며... 여자아이와 같은 방법으로 음을 낸다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성부를 나누어 부르는 복선율은 교회 음악에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다.

그러자 문제는 박자에서 발생하였다. 초기 13세기의 종교음악들은 4/4의 형태를 띄고 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리드믹 모드를 연구하면서 1박을 뺀 3박에 대한 관심이 점차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 교황이었던 니콜라오 3세는 이러한 3박자 음악을 기존의 음악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악마의 음악으로 규정하게 되었다. 이에 음악가들은 3박자에 삼위 일체를 끼워 맞춰 교회를 설득하였고, 이에 따라 3/4 음악도 교회 음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비교적 최근으로 돌아와보자. 20세기 말에 교회는 현대 음악에 물결을 맞게 되었다. 경배와 찬양, 올네이션스 등으로 인해 퍼진 1세대 CCM복음성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교회에 새로운 찬양의 물결을 부어 주었다. 그러자 이에 따른 논란이 시작되었다. 과연 교회에서 드럼과 같은 현대학기를 사용하여도 괜찮은 것인가? 보수교단 중에는 여전히 이러한 현대 악기[1]에 대한 예배의 사용을 금하는 곳도 존재한다. 심지어 이러한 논쟁 가운데 한 보수 교단 목사는 드럼이라는 악기를 현대 교회의 오적(五賊)이라고 이야기 하며 적폐 해야 할 요소라고 이야기 한다. 이는 그 주장의 근거와는 별개로 그동안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던 많은 드러머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상처입히게 되었다.

본인도 현재 기타리스트와 뮤직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그러나 막상 교회와 관련된 일을 하다보면 이러한 현대 음악을 필요로 하면서도 아티스트들 면전에서 이러한 음악이 필요한 것인가 논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은 많은 크리스찬 음악가들을 질리게 하였고, 상처받아 CCM계를 떠나게 하는 일들이 되었다. 이렇듯 외적이든 내적이든 이러한 CCM에 대한, 그리고 음악 장르에 대한 논쟁은 음악을 생업으로 삼는 누군가의 상처를 불러온다. 특히나 이러한 부분은 뉴에이지를 사상적 뉴에이지와 음악적 장르의 뉴에이지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상처를 받은 피아니스트 이루마씨를 대표적인 예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2]

         그렇다면 이제 두가지 영상을 보면서 과연 그들이 이야기 하고 있는 CCM에 대한 비판이 올바른 것인지 확인해보자.

                              

[첫번째 영상 : The Distraction Dilemma - Christian Berdahl][3]

 

         첫번째 교수님이 감명받았다고 추천해 주신 영상은 유투브에 사탄의 음악이라고 올라와있는 현대 음악(CCM)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영상의 강연자는 Christian BerdahlShepherd’s Call Ministry라는 단체를 이끌고있는 재림론자이며, 동시에 제7일 안식일교의 종교인, 즉 이단이다. 때문에 그가 주장하는 내용들은 그들의 신학과 함께 이해해야 명확한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음 몇가지의 반박을 통해 이 영상은 결코 진리를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1. 강세가 부자연스러운 음악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처음 도입부에 그는 박자를 이야기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 첫 도입부만 봐도 이 사람이 음악적인 지식은 전혀 없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정통 4/4박자를 예시로 들면서 강세의 자연스러움을 이야기 한다. 그는 강--중강-약의 진행인 One, Three에 강세가 붙는 박자는 자연스러운 박자, 그리고 Two, Four처럼 뒤에 강세가 붙는 박자는 어색한 박자라고 이야기 하며 이는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박자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박자의 강세는 완벽하게 상대적인 개념이며 결코 어떤 박자를 자연스럽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One, Three박자에 강세가 들어가는, 흔히 우리가 강--중강-약으로 이야기 하는 박자는 유럽의 정통적인 고전음악계열(Classic)의 박자이다. 우리가 클래식 음악이라고 부르는 유럽의 고전음악은 이러한 One, Three의 강세를 토대로 발전해 갔으며, 앞단에 강세가 붙는 모양으로 발전해 왔다. 때문에 이러한 클래식 음악 계열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박자가 자연스러울 것이다.

 

         Two, Four박자에 강세가 붙은 음악들은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음악들이다. 이러한 음악들의 시초는 Afro계열의 음악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유럽의 음악을 기반하지 않은 흑인들의 음악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들은 세계 각지로 팔려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미국에 특히 많이 이주하게 되었고 그 중간 기점으로 쿠바에도 많이 팔려 들어가게 되었다. 때문에 우리가 Afro-Cuban이라고 부르는 쿠바의 클라베 박자, 맘보같은 박자들도 two, Four계열의 강세를 갖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미국이다. 40년대 이후의 음악의 풍조는 미국이 항상 주도 해왔다. 비록 중간중간 British invasion이라고 부르는 영국의 음악이 대두된 시점이 있었으나, 큰 방향 안에서는 미국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 음악시장이다.[4] 이는 노예로 팔려간 흑인들의 음악에서부터 시작된다.

         흑인들은 목화밭에서 주로 일하게 되었다. 일하면서 그들은 그들의 고단한 노동을 풀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며 느린 곡조로 자신들의 삶을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노래들이 ‘Call & Response’를 기반으로 한 Blues[5]라는 장르의 시작이다. 또한 몇 세대 지나지 않아 귀족 집안의 노예로 들어간 흑인들이 백인들의 클래식을 배우면서 특유의 박자감각을 이용하여 클래식과 비슷하지만 다른 음악을 만들어 내는데, 이러한 곡이 Rag Time[6]이다. 이러한 블루스와 랙타임을 기반으로 미국의 음악이 발전되게 되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음악이 바로 Jass라고 불리웠던 Jazz[7]이다.

         이러한 Jazz음악의 특징은 흑인의 고유 박자 로부터 출발해 왔다는 점을 특징으로 갖기 때문에 DrumSnare는 자연스럽게 Two, Four에 위치하게 된다. 비록 Swing Jazz와 같은 강력한 Two-Four박자가 아니더라도 Jazz계열의 실용음악은 뒤에 강세가 위치하게 된다. 이러한 리듬을 듣고 자란 사람들, 특히 미국의 대부분의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은 One-Three 보다는 Two-Four박자가 훨씬 자연스럽게 들린다. Christian Berdahl의 주장을 따라보면, Two-Four박자가 자연스러운 사람들, 특히나 이러한 박자를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흑인들, 혹은 다른 전통의 민족들은 모두 마귀의 자식들이며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인가? 이것은 상당히 편협하고 말도 안되는 차별적인 발언으로 볼 수 있겠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강세가 따로 있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강세가 따로 있는가? 애초에 말도 되지 않는 편협한 시각에서의 주장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박자와 관계 없이 찬양하는 사람들 모두를 사랑하시고, 당신을 향한 진정한 찬양을 기뻐 받으실 것이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23:21)

 

[2. 싱코페이션은 사람을 방방 뛰게 하는 악마의 박자놀음인가?]

         그는 싱코페이션을 이야기 하면서 이러한 강세를 뒤로 미는 행위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사실이다. 멀쩡히 가던 강세를 일순간적으로 갑자기 당기거나 밀게 되면 사람은 그 박자에 반응하여 리듬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싱코페이션은 당김음혹은 강세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사람이 주장하는 것만 싱코페이션인가? 찬송가에는 이러한 부분이 없는가? 싱코페이션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즉 강세 이동을 위한 음악적 구성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찬송가에서 많이 쓰는 싱코페이션 기법에는 페르마타를 사용한 음 길이의 변화를 통한 방법이 있다. 이러한 음 길이를 변화시키면, 다음 박자의 강세 위치를 변화시켜 리듬감이 순간적으로 생기게 된다.

         그가 주장하는 이러한 싱코페이션의 폐해는 바로 사람에게 기쁜 마음이 든다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찬양하면서 마음이 기뻐서 뛰어 노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 찬양을 하면서 어떻게 기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인가? 7일 안식교의 교리는 나는 잘 모르고 알 생각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찬양함에 기쁨을 주셨고 그 기쁨의 찬양을 받으신다. 다윗의 아내였던 미갈은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뛰노는 다윗을 비웃다가 결국 그 태가 끊어져버렸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삼하 6:21)

 

 

[3. 마이너 스케일의 음악은 불경건한 음악이다?]

         마이너 스케일의 음악은 불경건한 음악인가 하는 논란은 이전부터 많이 존재 하였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사용되고 있는 명확한 장단조인 Ionian, Aeolian스케일이 정립되기 이전의 선법을은 Dorian이라는 선법에 의거한 마이너 계열의 선법이었고, 이름 또한 교회에서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Church Mode(교회선법)이라고 불리운다. 더 깊게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전통 음악들, 쉐마 이스라엘등을 보아도 Major(장조)의 성격을 가진 곡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르네상스 이전의 음악들은 이렇게 장조와 단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인간적인 본성에 의해 만들어졌고, 후에 분석해 보면 이들은 전체적으로 단조적인 색채가 많이 보이게 된다. 한국의 전통음악 조차도 단조 장조가 명확하지 않지만, 분석해보면 단조의 느낌을 많이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인간이 가장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는 음악은 단조계열의 음악일 수 있다. 이는 앞서 박자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말을 가져와 그의 말로 그를 반박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Minor(단조)가 불경하다는 인식은 르네상스 이후 음악이 체계적으로 정립되가면서 단조의 분위기가 어둡기 때문이라는 이류를 가져온 이후로 시작되게 되는데[8], 이 때문에 이들은 단조 곡의 아멘에 장조를 가져오는 만행 아닌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9]. 이러한 논란은 음악적 체계가 더욱 더 정립이 된 이후에 단3도를 불협으로 인식하지 않고, 3도를 포함한 minor코드 자체 또한 minor-Tonic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사라졌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이자의 주장은 상당히 구시대적 발상이며 무지의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순히 자신이 듣기에 불완전하고 불경하다고 해서 그 음악이 사탄의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한번 느끼지만 제7일 안식교의 교리에 따른 것 일수도 있다. 이러한 편협적이고 구시대적인 시각으로 현대의 CCM, 또는 현대의 음악 자체를 부정 하는 것은, 그리고 이미 해결이 된 논제를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어불 성설이다.

 

이에 저희가 그 말씀을 믿고 그 찬송을 불렀도다 (106:12)

 

         종합적으로 Christian Berdahl는 신앙적으로도 온전치 못하고, 음악적으로도 온전치 못한 극단주의적인 사람이다. 그는 현대 음악에 대한 반대에 대해 논리적이고 합당한, 그리고 성경적인 근거를 단 하나도 대지 못하였다. 이 영상은 그와 비슷한 사상을 가진 이단성을 가진 사람들과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자신들의 보수적인 측면의 가려운 부분을 잘 긁어주는 영상으로서 비춰질 것이다. 하지만 이 영상에는 끝내 진리도 있지 않으며 선동과 날조,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찬양의 기쁨을 모욕하는 말들 만이 있을 뿐이다.

         이 영상은 재고할 가치가 없다. 다만 이러한 이단성과 극단성, 그리고 사실 무근한 비방에 대해 노출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우리는 분명한 분별력을 갖고 어떤 것이 하나님의 메세지인지, 아니면 그것을 표방한 거짓 메세지인지 분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이 영상은 현대 예배에서의 CCM의 위치를 논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된다.

 

[두번째 영상 : The Foreign Spirit of Contemporary Worship Music – David Cloud][10]

 

         두번째 교수님께서 눈을 뗄 수 없도록 감명 깊었다고 이야기 하신 동영상은 현대 예배음악(CCM)의 진실이라는 영상이다. 영상은 현재 이단으로 분류된 근본주의 침례교회(독립 침례교)의 동영상이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침례회(남침례회)와는 다른 교단이다. 이들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철저히 배격한다. 또한 오르간을 카톨릭의 악기로 여겨 배척하고, 현대음악을 금기 시 하며, 예배에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편성의 음악만 사용하도록 하는 교단이다. 이러한 배경들을 안다면 이 영상은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 올 것이다.

 

         영상의 서두에서부터 David Cloud는 명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최근에 근본주의 침례교회 안에 현대 음악들이 침투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 이 영상은 근본주의 침례자인 David Cloud가 근본주의 침례교인들에게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사용하지 않은 다른 개신교의 현대음악(CCM)을 경계하고 배격할 것을 권고하는 영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영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이미 청중을 근본주의 침례교인으로 한정 짓고 그들만의 교리를 근거로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이 영상에 동의한다는 것은 이단 교리에 동의한다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용적인 측면이라도 교훈 삼을 것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이야기 하고 있는 말들이 얼마나 근거 있는 주장인지 살펴보자. 먼저 그는 수상 경력이 60인 규모의 악단의 퍼스트 클라리넷 주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소속팀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그 어디에서도 David Cloud가 소속된 팀이나, David Cloud가 클라리넷 주자로 활동한 내역을 확인 할 수 없었다.[11] 다만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그가 근본주의 침례회로 들어온 이후의 음악활동은 확인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근본주의 침례회에 소속해서 이러한 CCM아티스트들의 패악을 이야기 하고, 그 음악의 위험성을 이야기 하면서도 그 자신은 ‘Gospel of Power’이라는 락 밴드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Gospel of Power라는 그룹은 네쉬빌 지역에서 인디 그룹으로 그가 1995년부터 그가 사망한 2015년까지 활동을 지속하였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Modern Rock스타일과 심지어 그가 말하는 마약과 환각의 근원인 Psychedelic Rock까지도 포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가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음악적인 폐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그가 이 영상을 통해 주장하고 싶은 것은 근본주의 침례회가 아닌 CCM아티스트들이 그들의 교단 내에 침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일반 개신교의 CCM아티스트들이 술과 마약과 음행과 동성애 같은 죄악된 모습에 물들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는 전혀 없다. 그는 대표적으로 CCM을 받아들인 근본주의 침례회 소속 Lancaster교회의 예시를 들면서 이들이 돈 모엔, 달린첵(힐송), 크리스 탐린, 마이클 W. 스미스등의 음악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큰 책망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아티스트들이 이러한 죄악에 노출 되었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일부 알려지지 않은 죄악된 CCM아티스트 몇명을 가져온다. 그는 이러한 다른 두 사건을 교묘하게 엮어서 개신교의 CCM아티스트들이 사실은 죄악에 물은 악마의 숭배자들이다라고 거짓 증언한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성공한 듯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들이 근본주의 침례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을 통해 정말 개신교의 CCM아티스트들은 죄악된 자들이다라는 거짓 선동에 넘어간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영상의 목적은 결코 현대 음악을 현재의 예배에 사용해도 될 것인가에 대한 안정성 평가가 아니다. 다만 이단들이 자신들의 목적과 다른, 개신교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것을 경고하고 개신교 아티스트들을 비방하고 그들을 죄악 된 모습으로 사람들이 인식하게끔 만든 영상이라는 것이다. 이 영상 조차도 우리가 얻을만한 유익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첫 번째 영상보다도 논리적인 전개가 떨어지기 때문에 두번째 영상은 조목조목 따져서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 이는 그저 근본주의 침례회 안에서 통용하는 논리와 상대에 대한 날조로 이루어진 이단의 영상이다.

 

[결론 : CCM논란에 적절한 영상인가?]

 

         두 영상은 모두 이단들의 주장이다. 때문에 이러한 이단들의 수장들이 주장하는 내용에는 당연히 이러한 이단성을 포함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과연 이러한 이단성이 짙은 영상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는가를 살펴본 결과 전혀 적합하지 않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 5:22)

 

         백번 양보해서 이단성을 제껴놓고 생각한다고 해도 첫 번째 영상은 Christian Berdahl의 뇌내 망상에서부터 출발한 논리의 비약이 심한 말도 안되는 영상이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 내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이러한 것을 헛소리로 이야기 하는 분위기가 이미 이 영상이 퍼질 당시에 있었다. 두 번째 영상은 아예 취지가 맞지 않는 영상이다. CCM의 장르성이나 음악성에 대한 논란이 아닌 자신들 교단의 이익을 위하여 강연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감리교도인 우리가 무슨 사유로 근본주의 침례자들이 주장하는 다른 개신교의 CCM을 막아야 하는가? 라는 동영상을 보면서 유익을 얻어야 하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 두 영상은 교수님이 제시하신 ‘CCM의 음악성이 과연 오늘날의 교회 음악으로 적합한가?’하는 질문에 대해 적절하지 못하며 취지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 두 영상은 신앙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고려하기에 부적절하다.

         이러한 논의를 위해서는 충분한 자료와 당위성과 논지가 분명한 자료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단성 문제를 떠나서라도 이러한 음악적인 지식이 결여 된 채 이러한 현대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과 감정만으로 비판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현대음악을 비판하려면 그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전 지식은 갖추고 논의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논제를 마친다.



[1] 하지만 이들이 이야기 하는 현대 악기를 살펴보자. 드럼 세트의 기원은 전통 퍼커션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전통악기들을 현대 악기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한국 입장에서의 새로운악기로 이야기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2] 뉴에이지 음악이 초기에는 범종교 사상인 뉴에이지에서 출발한 것은 분명 맞다. 하지만 그 장르의 체계가 넓어지면서, ‘듣기 편한 음악들을 모두 뉴에이지라는 장르로 구분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2세대의 뉴에이지 음악들은 이러한 오해 이후에 생긴 표현인 세미 클래식이라고도 불리운다. 대표적인 기독교인 뉴에이지 아트스트로는 캐논변주곡의 조지 윈스턴, 야니등이 있다.

[3] https://youtu.be/GwwDBA-KPMU / 한국어 제목 : 사탄의 음악

[4] 다만 요즘에는 유럽의 집시계열 음악들이나, 프로그래시브 음악들 또한 주류로 점차 나오고 있다.

[5] 현대의 BluesDominant코드를 이용하는 12마디 진행의 연주로 정착되었다.

[6] 대표적인 곡으로는 Scott Jophin의 곡들이 있다 (Maple Leaf Rag, The Entertainer )

[7] 현대에서의 Jazz의 의미는 어려운 Standard Jazz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음악들 (Pop, Rock, Progressive)등 실용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음악들은 모두 이 Jazz를 기반으로 하는 음악들이다.

(반의어 : Classic / 혹은 전통계열의 현대음악)

[8] 단조를 이루는 주요 Interval(음정)중 하나는 바로 단3도이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이러한 단3도의 Interval을 불협으로 생각하였고, 때문에 찬송가를 불협으로 마치는 것은 불경하다고 여겼다.

[9] 이를 피카디 선법이라고 한다. 3도를 단3도에서 장3도로 옮겨주어 단조에서 장조로 바꾸어 준다

[10] https://www.youtube.com/watch?v=Rwp0xDGzAi0 / 한국어 제목 : 현대 예배음악(CCM)의 진실

[11] 하지만 그가 이런 내용 가지고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60인조의 악단은 작은 무명 악단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프로팀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