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사탄이 두려워하는, 그래서 우리에게 더 강렬한 -

 

 

C.S 루이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에 대한 통찰이 아니었을까? 인간의 연약함과 그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로 나아가는 것, 그러나 그 사이에서 이를 방해하는 사탄과 이를 도우려는 천사, 그들의 치열한 노력과 싸움이 이어진다. 교회 주보에 있던 한 글귀가 떠올랐다. 한 아버지와 손자의 대화였다. ‘아들아, 우리 마음속에는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있단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 안에서 항상 싸우고 있어’, 아들이 말한다. ‘그럼 둘 중에 누가 이기나요?’, ‘, 너가 밥을 주는 늑대가 이긴단다’. 이 내용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어디에 더 관심을 가지고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사고가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사탄이 인간을 나름 공격하려는 부분이 있고 인간의 취약함을 통해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그것을 알았기에 대비하고 방어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착한 늑대에게 나도 모르게 밥을 주지 않았던 것을, 아니 어쩌면 나쁜 늑대에게 나도 모르게 밥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에 대한 통찰은 하나님의 존재의 필요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몰랐으나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수많은 주제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존재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사탄의 공격은 다양하고 치밀하다.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도 하지만 때로는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므로 양날의 검이라 경계한다. 매우 객관적이며 차분하다. 그들의 목적은 영적인 세상에 대한 생각이나 궁금증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며 자신이 아닌 타인, 세상, 유행을 바라보게 함으로 그 풍조에 휩쓸리게 한다. 그들이 이끌어온 세상, 문학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정의를 바꿔버리고 사랑을 단지 육체적인 것으로 국한 시킨다. 육과 영을 분리시켜며 하늘에 계신 참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생각하고 규정하는 하나님에 머무르게 한다. 이는 상상과 감정이 아무리 경건하다 할지라도 의지와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과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면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도록 치밀한 점은, 이미 영성이 있는 자들에게 대하는 태도이다. 이는 그들의 신실함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싶을 정도이다. 영성을 제거할 수 없다면 그 영성을 부패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은,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그런 신실함과 같다. 이는 반대로 우리가 은혜를 받은 그 순간에도 결코 방심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때가 사탄이 더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의 믿음이 그저 생각에 머물러 삶의 처소에서 사랑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때임을 기억해야 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장교로 복무하며 수없이 외쳤던 말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항상 놓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다. 적을 아는 것에만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평가에있어서 야박할 정도로 섬세하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이 책을 통해 사탄의 전략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춘다면 우리는 이 책의 반밖에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사탄의 전략이자 우리의 연약함이고 사회의 상황이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