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죽음

 

 

- 아침이 온다면, 저녁이 있다 -

 

 

군 장교시절, 작전 수행 후 나를 데리러 오기로 되어있던 본부분대장이 갑자기 작전이 변경이 되었다며 다른 작전에 투입하게 되었다고 연락을 했다.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불과 두 시간 전에 연락했던 우리 부사관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너무나 가까이에서 그리고 생생하게 부사관의 죽음을 목격하고 난 후 인간의 삶에서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언제 맞이할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하루를 살더라도 값지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은 항상 앞에 있다. 안타깝게도 책의 제목이 거룩한 죽음인 것처럼, 우리는 사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책에서 짧은 인생이 영적인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냐는 말이 더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신학대학교에 와있다. 이제는 하루를 살더라도 값지게 살기 위해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이 길에 서 있는 내가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하는 대상은 당연히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음성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이 인생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하여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져라이 글 귀는 내 삶의 방향성을 나타내주는 말과도 같았다.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거룩한, 아주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을 회피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 노력하고 더 많은 것을 움켜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뒤로 밀린다. 이유는, 영원히 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침이 온다는 것은 저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순신은 말한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하면 죽을 것이다. ‘죽음을 마주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과 똑같은 표정으로 죽음을 직면할 수 있는 사람, 이 사람은 자기 몸을 떠받치고 있는 자기 영혼을 가지고 인생의 모든 고역을 완전하게 견딜 수 있는 사람이며, 부를 갖고 있을 때나 갖고 있지 않을 때나 똑같이 그 부를 경멸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는 자기의 통치자에게 순종하며,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며 욕심을 내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생명을 붙들고 있다면, 생명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위에 글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삶이 진정 자신의 삶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순교도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가치, 그 가치를 알기에, 나의 생명이 누구에게 기인하고 있는지를 알기에 우리는 거룩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세상 속에서 이 책은 거룩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무덤의 문을 두드려야 함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