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오리게네스, 너도 그렇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문구 아닌가?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 걸린 글귀로 나태주 시인의 풀꽃 중의 한 구절이다. 무엇이든 관심을 갖고 깊이 들여다보면 소중한 존재가 되고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뜻을 담은 글이다. 그 사람의 한 면만을 보고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한 대상을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아야 그 사람의 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다. 또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다. 어느 신학자의 한 책만을 보고, 그 사람이 했던 말 한 마디를 보고 그 사람 전체를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지금까지 내게 오리게네스는 막연하게 <철학자><이단 사상가>였다. 그러나 이번 독서를 통해, 그리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서 다시 말하면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서> 이런 내 생각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오리게네스에 대해 다룰 것이 너무 많지만, 가장 이단 사상으로 몰렸던 <성자의 종속성>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오리게네스 간단히 살펴보기 _ 성자의 종속성

당시 대부분의 철학자들처럼, 로고스 교리는 오리게네스의 그리스도론의 근원을 이룬다.(94p) 로고스 교리는 아래와 같다. 하나님은 홀로 초월하신 일자이시고 이 세상은 다(多)의 세계이다. 따라서 이 둘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중계자가 필요한데, 그분이 바로 로고스이다.

플라톤주의에서 하느님의 초월성은 우주에서나 인간에게 하느님이 어떤 행동이라도 한다는 가정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다.(94p) 이 로고스는 일자와는 일자성을 공유하시고, 이 세상과는 다중성을 공유하신다. 그런데, 이 다자와 연관을 맺는다는 그 자체가 벌써 가변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하나님보다는 밑에 위치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오리게네스의 사상에는 플라톤철학의 특징인 위계구조가 있어서, 하나님은 완전한 형상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가시적 세계를 연결하는 중재자라고 말한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지, 그리스도가 하나님은 아닌 것이다. 또한 오리게네스는 요한복음 주석에서 성부를 ‘정관사가 붙은 하나님(ho Theos)'으로 부르고, 성자를 ’정관사가 없는 하나님(Theos)'으로 부른다. 그래서 그는 아들에게 하나님과 동등한 첫째 자리를 부여하지 않고, 하나님 다음의 두 번째 자리를 부여한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오리게네스는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이단 사상가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아야 한다. 그리고 오래 보아야 한다.

당시 오리게네스의 상황을 알면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그는 당시 이방철학자들이나 유대교에서 공격하는 논리를 반박해야 했다. 오리게네스는‘왜 기독교는 유일신을 섬긴다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동시에 섬기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당시 플라톤 사상의 위계구조를 들어 변론했다. 변론하는 과정 중에 성자의 영원성과 종속성을 들게 된 것이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오리게네스가 주장한 종속성 하나만을 두고 그를 평가한다. 하지만 그는 성자의 영원성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했고, 무엇보다 그의 성서에 대한 사랑과 순교에 대한 열정은 그의 삶이 말해주고 있다.

 

오리게네스, 너도 그렇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면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이 내게 <이 사람의 성격은 이럴 거야> <이 사람의 신앙은 이 정도 이겠지?> <아, 이 사람은>라고 말해 온다. 흔히 말하는 “촉”이다. 실제로 이 촉은 별로 틀려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 독서를 하게 되면서, 오리게네스를 알아가면서 내가 이제까지 맞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리게네스도 단편적인 사건과 주장만 보았을 때에는, 내게 중요한 사람으로 다가오지 않았었다. 단지 이단적인 사상과 철학에 심취한 한 명의 불쌍한 영혼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살펴보고, 시대의 상황을 살펴보고, 그의 다양한 주장들을 보게 되면서, 이런 나의 판단과 평가가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 시대에 위대한 성서해석자였고, 영성신학자였고, 훌륭한 변증가였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이제까지 내 판단과 평가는 뒤로 하고, 다시 길고 진지하게 보려고 한다. 내 경험적이고 불명확한 <촉>이 아닌, 자세히 오래보아야만 알 수 있는 <참>으로 말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오리게네스, 그리고 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