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론을 읽고서

정의론의 전제 원초적 입장, 무지의 베일로부터 평등으로 경향

사람들은 정의와 부정의의 의견이 분명하지 않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즈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고 사회 협동체의 이득과 부담에 대한 적절한 분배를 정해줄 특정한 원칙들의 체계가 필요하다는 마음의 준비 곧 정의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p38) 이 정의관의 역할은 결과적으로 효율이나 조정 그리고 안정의 문제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위반이 생길 경우에는 더 이상의 탈선을 예방하고 그 사회 협동체제는 안정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p39) 이러한 원칙의 전제는 그 형식에 있어서 일반적이며, 적용에 있어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 원칙의 합의와 실현은 공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도덕적 인간의 서로 다른 요구에 서열을 가져오는 결정성을 가져야 한다.(p188-194) 그렇다면, 합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정의관을 가지고 있다는 논지의 근거는 무엇인가? 롤즈에 의하면 도덕적 임의성에서 벗어나 무지의 베일에 의한 원초적 입장[1]에 인간을 조건 지워 진다면, 인간은 상호무관심한 합리적 인간[2]으로서 최소 수혜자의 최대 이익(p215-222)을 선택한다. 이는 공리주의적인 관점에 의해서 행복의 극대화의 논리에 침해 받을 수 없는 평등한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불평등이 임의적으로 존재하는 상태에서도, 그 불평등의 최대 수혜자는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최소 수혜자의 이익에 관심, 호혜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p49,152) 특별히 무지의 베일 속에서 합의에 참여함으로써 정의의 원칙들을 알고 있으며 이 공지성을 지닌 사회 구성원은 원칙을 준수하는 사회체제 속에서 그 제도를 준수하고 그들의 선(가치관과 덕)이 실현될 기대치의 공통기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p100)

정의론의 주제

롤즈에 의하면 정의의 1차 주제는 사회의 기본 구조, 즉 사회의 주요제도가 권리와 의무를 배분하고 사회 협동체로부터 생긴 이익의 분배를 정하는 방식이 된다. (P40) 이는 적절한 제도와 형별, 그 체제에 대한 합의에 참여하는 공공의 이해를 수반한다. (PP98-99) 이러한 체제 속에서 사람들은 어떠한 기대와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PP99-100) 그러나 사회 속에는 임의성에 의한 차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구조는 그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를 제일 먼저 다루어야 한다.(PP40-41) 그런데 정의론의 논지를 전개하기 전, 롤즈는 그의 연구범위와 주제를 제한한다.(P41)

1) 롤즈는 특수한 경우의 정의만을 문제 삼고 있다. 그는 폐쇄 체제로 생각되는 사회의 기본 구조 속에서 합리적인 이득이나 손실로 인정되는 모든 것의 합리적인 분배에 적용되는 개념으로써의 정의관을 주제로 삼고 있다. 또한 롤즈는 제도나 사회 체제 일반의 정의를 문제 삼거나 국제법이나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정의를 본격적으로 다루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가 제시한 58절의 양심적 병역 거부의 문제와 같이, 국제법과 관련된 징집의 문제는 자유 자체의 옹호를 위해서 요구되는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3] 이에 따라 연역적 추론에 의해 정의관의 확장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2) 또한 이 논의는 질서정연한 사회를 규제하는 정의의 원칙을 검토한다. 롤즈는 모든 사람들이 정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회를 가정함으로써, 먼저는 철저한 준수론을 분석하며, 후로는 부분적 준수론을 통하여 부정의를 처리할 방법을 규제하는 원칙들을 연구한다.

롤즈는 사회 정의에 있어서 배분적 측면을 평가할 기준을 제공하지만, 사회 체제 일반이 갖는 다른 덕목들을 규정하는 모든 원칙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정의 이외에도 효율성의 유무, 개방성 여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회 체제 일반이 가지는 다른 덕목들(효율성의 유무, 자유의 유무)과 이 정의관 사이를 조정하는 전체적인 관점은 바로 사회의 이상이다. 나아가서 사회의 이상은 사회 협동체의 목적과 목표를 바라보는 관점, 즉 사회관과 결부되어 있다. (p43)

정의의 원칙

이러한 전제와 주제를 가지고, 롤즈는 모든 사이의 기본가치(primary goods)-자유와 기회, 소득과 부 및 자존감의 기반 등-는 이러한 가치들의 일부 혹은 전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최소 수혜자의 이득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정의관을 추론한다. 구체적으로 롤즈는 원초적 입장에서 채택될 두 가지 원칙(p105)을 제시한다.

첫째: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기본적 자유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둘째: 사회적 및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조정되어야 한다.

 ) 그 불평등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리라는 것이 합당하게 기대되고

 ) 그 불평등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에 결부되어야 한다.

롤즈는 균등한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 체제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전제된 사회 체제에 적용될 원칙을 구분한다. 이 때의 시민의 기본적 자유란 정치적 자유(피선거권과 선거권) 및 언론과 집회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사유) 재산권과 더불어 인신의 자유, 그리고 법의 지배라는 개념에 의해 규정된 바, 부당한 체포 및 구금을 당하지 않을 자유이다.(p106)

두 번째 원칙에서는 재화와 천재적 특질이 반드시 균등할 필요는 없으나, 이 불평등은 모든 사람에게 결과적으로 이익이 되어야 하며, 권한과 명령을 가지는 직위와 직책을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되도록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p107-108) 소득 및 재산의 분배의 권한, 책임 및 명령 계통 등에 있어서 차등을 두는 제조직의 기획에 적용된다.

이러한 원칙은 반드시 서열(p110)을 가지고 있다. 2원칙 때문에 1원칙은 침해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p214) 앞서 양심적 병역 거부의 예와 같이, 징집의 불평등(2원칙)이 평등의 자유의 원칙을 침해한다거나, 부정의의 침략을 위한 수단이 된다면 1원칙을 가지고 양심적 병역 거부가 정당화 될 수가 있는 것이다. (p495-496) 자유는 자유를 위해서만 제한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제한에 관한 자유의 우선성의 규칙(p109)

a) 덜 광범위한 자유는 모든 이가 공유하는 자유의 전 체계를 강화해야만 하고

b) 덜 평등한 자유는 보다 작은 자유를 가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제 2원칙에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됨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됨은 애매한 의미를 지니는데, 롤즈는 이를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의 결합으로 정리한다. (p105-p112) 또한 기회균등의 원칙은 항상 차등의 원칙 보다 서열이 앞서야 한다.

a) 기회의 불균등은 보다 적은 기회를 가진 사람들의 기회를 증대해야만 하고

b) 과도한 저축률은 결국 이러한 노고를 치르는 사람들의 부담을 경감시켜야 한다.

이 차원에서 보다 처지가 나은 자들의 보다 높은 기대치가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그것이 사회의 최소 수혜자들의 기대치를 향상시키는 일부로서 작용하는 경우다. 특별히 차등의 원칙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모든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최소 수혜자의 이익을 증진시키지 않는 한 모든 사회적, 경제적 가치는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하며 또한 출신, 지능, 체력 따위의 천부적 자산은 그 자체로써 아무런 도덕적 가치를 갖지 못하며 오히려 부당한 불평등으로 간주되어 사회 정의의 원칙에 의해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p119) 이제 2원칙에서 순수한 절차의 정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파이 자르기의 예(p135)와 같이 분배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분배 후에 얻게 될 파이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순수 절차적 정의라는 개념이 분배적인 몫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제도의 체계가 설립되고 운영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만 우리는 정의로운 분배의 절차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p137)

정의론에 대한 질문들

1. 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회 체제에 기꺼이 호응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정의로운 절차가 이루어지도록 규제하는 체제, 파이의 크기를 조절하는 사람들의 합의에 대한 참여를 과연 이끌어낼 수 잇는가? 이는 호혜성과 공지성을 전제로 하는 질서정연한 사회체제 속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가족제도의 예와 같은 연대적인 책임에 있어서 이 정의론은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는가?

또한 자유가 제한을 받는 상황에 대해 롤즈는 거부의 권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안정과 조화를 위해 거부의 의무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유한계급론을 통해서 과시적이며 모방적인 인간의 본성을 발견하였으며 위키리크스를 통해 교활한 부정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듯 오늘날의 현실은 조화, 갈등 모방의 사회에 살고 있는데 롤즈의 정의론은 이 모든 현실에 답하기에는 무언가 한계가 있다고 느껴진다.

2. 원초적 입장에서 최소 극대화의 원리를 선택할 것이라는, 롤즈의 보수적이고 긍정적인 인간 인식에는 문제가 없는가? 한 예로, 방사능 비가 올지, 안 올지 확률로 계산할 수 없는 날, 어떠한 인간은 최소한의 위험까지도 감수할 수도 있지 않는가? 원초적 입장에서 인간이 항상 최소의 극대화의 원칙을 따를지 의심스럽다.



[1] 이러한 상황이 갖는 본질적 특성 중에는 아무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계층상의 위치를 모르며 누구도 자기가 어떠한 소질이나 능력, 지능, 체력 등을 천부적으로 타고 났는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심지어 당사자들은 자신의 가치관(종교적 가치관을 포함한)이나 특수한 심리적 성향까지도 모른다고 가정된다. 정의의 모든 원칙은 이러한 무지의 베일 속에서 선택된다. 그럼으로써 보장되는 것은 원칙들을 합의함에 있어서 아무도 타고난 우연의 결과나 사회적 여건의 우연성으로 인해 유리하거나 불리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p196) 이러한 차원에서 정의의 원칙은 칸트식의 정언명령과 유사하다.(p341)

[2] 합리적인 인간은 시기심, 애정, 동정심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구체적인 가치관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어떤 사회적 기본가치-권리와 자유, 기회와 권한, 소유와 부, 자존감-을 수단적 가치로서 더 가지길 원한다. 그러나 무지의 베일 속에서 합리적인 인간은 부정의에 의한 임의적인 불평등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의감을 가지고 가능한 한 자신들의 목적 체계를 증진시킬 원칙을 받아들이며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는 공지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만 입힌다면 자신의 손실도 선뜻 받아들이려는 그러한 자가 아니다. 그들은 승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 체계에 가장 높은 점수를 원한다. (p204-205)

[3] 그것에는 해당되는 사회의 시민들의 자유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의 사람들의 자유 역시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징집군이 부당한 외국 정복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국민은 거부의 권리를 지닐 수 있으며(P495) 거부의 의무까지도(P496) 갖는다. 반대로 징집이 자유의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징병이 허용된다.(p495) 질서 정연한 사회의 정의로운 제도도 이러한 차원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징집의 대상이 다소간 차별 없이 고르게 정해져야 하며, 계층적 편파성이 없는가를 확인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P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