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űther, Gerald.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세계적인 뇌과학자가 우울한 현대인에게 전하는 감동과 희열의 메시지』〔Was Wir Sind Und Was Wir Sein Kőnnten〕. 서울: 추수밭, 2012.

 

 

뇌과학자의 글인데, 아주 대중적으로 평이하게 쓰였다. 전문용어는 최대한 자제해서, 필요할 경우에만 소개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라는 ‘유대’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인류가 나아가야 하는 새로운 방향, 잠재력 발휘형 문화을 제시한다.

 

In a Better World: 새로운 ‘우리’를 꿈꾸다.

 

2011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인어베러월드’를 관람한 바 있다. ‘악’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아주 흥미롭게 표현해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영화인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게랄트 휘터는 그의 저서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통해 더 좋은 세계가 펼쳐지기 위한 훌륭한 제언을 던져주고 있다. “자원 착취형 문화”(189ff.)에서 “잠재력 발휘형 문화”(196ff.)로의 전이를 요청 말이다.

 

뇌과학자인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인류를 다른 생물과 구분짓는 것은 “미세한 DNA 한 조각”(43)이다. “특이한 뇌 발달”(45-6)이다. 이 사소한 차이 하나로 인해 인간은 “생존이나 종족 번식과 무관한 것조차 중요하게 여기는 유일한 생물체”(57)가 된 것이다. 생존과 관계 없는 부분, 인간의 “주관적인 평가”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 그 부분에 주안함으로써 인류의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러한 발전 과정 중에 상반되지만, 상호보완되는 두 요소가 있다. 순응/적응과 발견/창조가 그것이다. 순응은 기존의 체제를 유지/보존한다. 그러니까 “각 공동체 구성원들은 순응을 통해 공동체에서 이미 이루어 놓은 성과들이 더욱더 원활하게,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데 기여”(77)한다. 이는 기존체제(Majority)에 영합하는 것이기에, 소속감, 유대감, 친밀감, 안정감이라는 감정에 잇대어진다.

반면에 발견/창조는 기존의 것을 해체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인간의 주관적인 평가 아래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기존의 것과는 다른 것을 발견한 결과이다. 이런 역할을 하는 “규범 파괴자들”은 극소수인 까닭에 불안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에 의해 “새로운 경험 공간이 열리면, 처음에는 젊은이들의 문화라 하여 어른들로부터 의구심 어린 눈초리를 받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묵과되고, 결국에는 어른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새로운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도가 형성된다. 이와 함께 판단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결국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시각의 변화로 이어진다.”(159)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잠재력 발휘형 문화”가 되어야 함을 논하면서, 자녀 양육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놀이(204ff.), 동화 구연(210ff.), 노래[합창](213ff.) 등을 권하는데, 이는 모두 “-타인과, 자연과, 몸담고 있는 문화와-관계를 맺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좋은 사람과 만남을 중시하는데, 저자의 권면은 다음과 같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날 때 아이의 상태도 호전될 것이다.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아이를 무엇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 한 번 더 시도해 보도록, 또 긴밀한 유대 속에서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성장하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가능한지 한 번 더 지켜보라고 아이를 초대하고 격려하고 영감을 주는 그런 사람 말이다.”(217)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다함께 힘을 모아야만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226)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마치 ‘절대악’ 같은 존재가 활기를 치는 듯하다. 영화 ‘인어베러월드’에서 임신한 여인의 뱃속 아이의 성을 맞추기 위해 배를 가르는 악당 ‘빅 맨’, 폭력이 일상화된 정비사 ‘라스’. 그들과 어떻게 화해하고 공명할 수 있을까? 잠재력 발휘형 문화를 위해 그들을 어떻게 설득시키고 납득시킬 수 있을까?

 

인류는 오랜 시간을 생존해왔다. 긴 시간 동안을 함께 살았다. 여럿이서 함께 걸었다. 그리고 그 뒤에 길이 생겨났다. 헌데 그 길을 돌아보면, 갈 지 자 행보였던 것 같다.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방황한 듯 하다. 주관적인 평가에 따른 중요한 것은 항상 변해왔으니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해가고 있다. 저자의 표현은 이렇다. “과거의 ‘우리’는 태어날 때 주어졌던 ‘우리’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 가는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신영복 선생님의 한 말씀이 생각난다. “세상에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세상에는 이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다. 세상을 자기에게 맞춘다는 의미가 세상을 인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라면 글자 그대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이처럼 우직한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조금씩 새롭게 바뀌어 왔다는 사실이다.”(신영복, 『변방을 찾아서』[서울: 돌베개, 2012], 57)

 

쓰고나니 횡설수설이다. 답을 몰라 이리 저리 헤매이는 현재 내 모습을 반영해주는 듯하다. 새로운 ‘우리’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되지 못한 내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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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및 서예. 신영복 저.

자료출처 http://www.shinyoungbok.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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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otation

 

삶은 곧 앎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9.

 

어떻게, 무엇을 위해, 얼마나 즐겁게, 또 얼마나 집중적으로 사용했느냐에 따라 우리 뇌의 모습이 결정된다 ... 12.

 

앞으로 인간의 놀라운 잠재력이 좀 더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일상 세계를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들 .. 13.

 

 

불안은 주관적이기 마련인데, 무엇보다 주관적인 가치 판단의 결과이다. 27.

역사책 ... 거기서 우리는 지배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영토에 거주하던 백성들을 상대로 거듭 불안을 조장해왔는지도 배우게 된다. 지배자들이 불안을 극복하는 해결책으로 백성들에게 내놓은 것은 결국 그들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유지시켜 주는 수단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심한 불안 상태에 있을수록 그 전략은 더욱더 먹혀들어 갔다. 28.

 

우리감정과 우리의식 ... 혼자보다 남들과 함께 무언가를 더 잘 이해하고, 더 효과적으로 만들고, 더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될 때 공동체 구성원들의 ‘우리의식’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30.

 

발견과 창조. .... 그동안 타인을 배척하기 위해 공동체 안에 구축된 조직체들이 고스란히 해체되는 현상. 34.

 

과거의 ‘우리’는 태어날 때 주어졌던 ‘우리’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 가는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36.

 

인간... 유전자상으로 우리를 원숭이와 구별해주는 것은 미세한 DNA 한 조각에 불과할 것이다. 43.

결국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짓는 것은 특이한 뇌 발달을 가정하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는 능력들인 셈이다. 45-6.

뇌는 사회적 기관이다. ... 여기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은 누구도 혼자서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을뿐더러 살아남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54.

 

아이들의 두 가지 기본 경험. ... 긴밀한 유대의 경험, 그리고 성장하고 자기만의 능력을 습득해 가는 경험이다. 56.

 

우리는 생존이나 종족 번식과 무관한 것조차 중요하게 여기는 유일한 생물체다. 57.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곁에 필요하다. 비록 생각 속에만 존재한다 해도, 그 일을 소중히 여기고 좋아하는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 한다. 인간은 혼자서 열심히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낼 뿐 아니라 그에 더해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58.

 

인간은 개인화된 공동체 안에서 개별 구성원 또는 공동체 전체의 잠재력이 발휘되게끔 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나아가 공동으로 축적한 경험들, 각 구성원들이 획득한 능력과 지식, 공동체가 발전시킨 생각과 아이디어를 후세에 전달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61.

 

 

적응 과정.. 이리하여 유년기의 아이들은 주위 어른들의 생각과 행동 방식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자라 청소년이 되면 지금 소속되어 있거나 속하고 싶은 또래 집단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따라가게 된다. 69.

하지만 상황이 뒤바뀌어 뇌 안의 오래되고 익숙한 회로 패턴으로는 미처 대처하기 힘든 새로운 도전이 닥치는 순간 그들은 십중팔구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일방적으로 프로그램화되고,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목적을 위해 거듭 사용되는 뇌 역시 애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결과물이기는 마찬가지다. 74.

 

거울뉴런과 순응. 74쪽 이하.

 

순응 과정이 자발적이고 의욕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억지로 강요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 각 공동체 구성원들은 순응을 통해 공동체에서 이미 이루어 놓은 성과들이 더욱더 원활하게,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데 기여할 따름이다. 77.

 

앎을 찾아가는 구도자로 남고 싶다면 그 같은 경이로운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서 더 많이 알아내고 발견할수록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알아내고 발견하려는 것들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관계를 통해 그것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발전시킬 넉넉한 가능성을 선사하게 된다. 83.

83.

 

경험에 따라 만들어진 내적 이미지가 행동을 이끌고, 사고를 규정하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86.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똑같은 조건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므로, 개개인의 뇌 안에서 형성되는 이미지와 표상의 세계는 둘도 없는 독특한 구성물인 셈이다. 87.

정체성을 형성하고 소속감을 불러일으키는 공동의 표상은 특정 이념이나 확신의 형태로 공동체 구성원들에 의해 대변되고 전달된다. 89.

교과서, 인간상... 사람들은 그것들을 실현하고자 애쓰고, 따르고, 또 스스로 묶어 놓은 사슬처럼 거기에 매달려 있다. 그렇다. 스스로 묶어 놓은 것이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느니, 어떻게 하면 세상에 잘 적응하고, 어떻게 타인을 대하고, 또 옷은 어떻게 입고, 집은 어떻게 짓고 방은 어떻게 꾸며야 한다는 것에 관해 정해진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89.

... 이 연구가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것은, 사람의 뇌와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좌우하는 것은 어떤 ‘환경’에 있고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가 아니라 바로 본인이 내리는 판단이라는 점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그 사람이 지닌 표상, 내적 자세, 확신에 달려 있다. 이 같은 표상과 확신은 그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들의 결과이기도 하다. 94.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듯 보이는 순응의 과정이 그릇된 표상과 확신을 자리 잡게 하고 고착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95.

 

저자의 강력한 문제제기!!! 우리는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경쟁의 압력에 짓눌린 이들은 계속해서 발전하거나 잠재력을 발휘해 나갈 수 없으며, 오히려 경쟁을 부추긴 결과는 심화되는전문화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이다. 경쟁으로는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바보와 운동선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양한 교양을 쌓고, 다방면에 유능하며, 사려 깊고, 멀리 생각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안정되고 침착하면서, 강인하고 사교성 좋은 사람을 배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경쟁의 압력이 짓누르는 환경에서 그 같은 조건은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다. 경쟁이 만들어내는 것은 획일적인 순응이지 복합적 능력이나 관계를 맺는 능력이 아니다. 이는 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102.

 

분명 뭔가가 잘못된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나섰던 우리는 아무래도 막다른 골목으로 빠져버린 듯하다. 109.

 

110. 우리의 감성에 깃든 지능과 힘을 재발견하고, 소중히 여기면서 그것들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맹목적 이성이 초래한 세상의 얼토당토않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그뿐이다. 우리는 사고, 느낌, 행동, 혹은 합리성과 감성, 혹은 정신과 마음과 몸의 잃어버린 통일성을 되찾고자 애써야 한다.

 

 

누구나 잘 알다시피,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도달하려고 애를 쓰게 마련이다. 119.

따라서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주관적인 평가다. 말하자면 아이 혹은 어른이 각자의 ‘환경’ 속에서 중요시하고 관심을 쏟고 열광하는 것이다. 120.

정말로 중요한 일이 벌어질 때만 뇌 안에서 반응을 일으키고 진정한 변화가 생긴다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121.

 

주관적인 평가에서 중요한 것. 1. 자신의 몸에 대해 알아감.. 2. 친밀감/유대감/소속감 -역효과- 비위 맞추기..

 

열광의 상태. 창조적 욕구

 

142. 사는 데 무엇이 중요한지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기존에 이룬 것을 간직하고, 지키고, 방어하는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전히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고, 실력과 재주를 키우고,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데 열중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자라고 있는 전 세계 아이들을 통해서 평생 만족스럽게 세상을 살려면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를 훨씬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49. 다음 세대들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는데, 이때까지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이러한 적응 과정을 제노포에시스xenopoiesis, 즉 외부생성이라 부르지 않고 오토포에시스, 자기 생성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대로 아이를 형성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만들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 자신이 중요하고 의미 있게 여기는 것들을 아이들 스스로도 중요하고 의미 있게 판단하도록 그들을 초대하고, 격려하고, 영감을 줄 수 있을 뿐이다. 151-2.

 

자신의 창조력을 되찾는 이 과정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부모들 스스로가 대부분 과거 억압적인 상황에 퍼져 있던 순응의 압력에 성공적으로 맞섰던 사람들이다. 더구나 비교적 자유로운 경험 공간에서 장해 개방적 태도를 기를 수 있었던 본보기와의 만남은 그런 해방의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58.

이 같은 ‘규범 파괴자들’에 의해 마침내 새로운 경험 공간이 열리면, 처음에는 젊은이들의 문화라 하여 어른들로부터 의구심 어린 눈초리를 받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묵과되고, 결국에는 어른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새로운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도가 형성된다. 이와 함께 판단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결국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시각의 변화로 이어진다. 159. 패러다임 쉬프트!!

 

신뢰! 신뢰는 유년기에 세 가지 차원에서 길러져야 한다. /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자기만의 가능성, 능력, 솜씨에 대한 신뢰 / 남들과 함께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뢰 / 세계가 의미로 차 있고, 그런 세계가 자신을 보살펴 준다는 신뢰 162-3.

 

비록 과거에 굳어진 사고의 틀을 고수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기존 사고가 수행하는 중요한 일이 있다. 일단 그것은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고, 무엇보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태도와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주위에 많으면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분리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고를 원한다면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불안감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 역시 뇌과학자들이 영상 기법을 통해 객관적이고 경험적으로 입증했는데-는 바로 신뢰다. 다시 말해 창의적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또 자신의 능력과 재주를, 경험과 지식을 신뢰해야 한다. 170-1.

하지만 진정 창의적인 사람이 되려면 일상 세계에서 습득한 능력, 지식, 재능, 생각들을 타인의 그것과 융합시킬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최대한 서로 다른 사회문화적 경험을 지닌 사람들과 만나고 신뢰가 가득한 교류를 나누는 것이 필수다. 171.

다시 말해 창의적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상호 신뢰를 두텁게 함으로써 각자가 지닌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172.

 

결국 우리는 본래의 ‘참다운 자아’를 찾아야 한다. 거기서 자신의 진짜 충동과 감정과 하나가 되고, 자신의 몸 안에서 집처럼 편안함을 느기게 된다. 그럴 때 비로소 더 큰 만족을 느낄 뿐 아니라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177.

 

유대 없이는 자유도 없다. 그런데 유대는 종속이 아니다. 인간은 상대에게 의존하지 않은 채 유대감을 느끼도록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동물이나 식물과도 관계를 만들어 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관심을 쏟거나, 아니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그들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가령 식량, 생활공간, 관심, 힘, 지식, 능력, 경험들을 말이다. 그럴 수 있을 때 우리는 유대 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181.

 

알베르트 슈바이처.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다른 방책이 아니라 다른 신조다.” 186에서 재인용.

 

내적 태도(186)

자원 착취형 문화/인간(189) // 잠재력 발휘형 문화(196)

무엇보다 쓸모없는 쓰레기 더미라 할 수 있는 ‘정크 DNA’(192)

 

자원 착취형 문화는 위로부터 조종할 수 있는 반면, 잠재력 발휘형 문화는 아래로부터 생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일상 세계를 새로이 발견하고 만들어 가도록 초대와 격려, 영감을 받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196.

 

우리가 지금 스스로에 감탄하는 것, 또 뿌듯해 하거나 여전히 우려하고 있는 것들은 결국 괄목할 문화적 성취의 결과이지, 그 어떤 생물학적, 심지어 유전자적 조건의 결과는 아니다. 201.

 

놀이(204ff.) 동화 구연(210ff.) 노래[합창](213ff.)

아이는 놀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208.

‘본보기’가 되는 어른들이 이해하며 돌봐주고 제대로 인내할 때 아이들은 주어진 다양한 기회를 창조적으로 이용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고유한 능력과 가능성을 깨닫고 계속 발전시킬 수 있다. 209.

결정적인 묘약은 아이가 동화의 내용과 등장인물과 맺는 정서적 관계다. 즉 동화를 들려주는 이의 감정이입을 힘입어 아이는 동화 속 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그때 비로소 동화는 아이의 뇌에 원기를 불어넣는 영양분이 된다. 212.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자신은 물론 타인과, 자연과, 몸담고 있는 문화와-관계를 맺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213.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날 때 아이의 상태도 호전될 것이다.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아이를 무엇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 한 번 더 시도해 보도록, 또 긴밀한 유대 속에서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성장하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가능한지 한 번 더 지켜보라고 아이를 초대하고 격려하고 영감을 주는 그런 사람 말이다. 217.

 

관심 공유 shared attention. 가령 엄마와 그림책을 볼 때, 다른 아이들과 탑을 쌓을 때, 남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연주하고, 그림 그리고, 공작놀이를 할 때 아이들은 그 상태를 체험한다. 이런 활동 속에서 아이는 타인과 깊이 맺어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동시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자신의 관심사를 통해 이 공동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이로써 아이의 두 가지 기본 욕구가 채워지게 되고 아이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훌쩍 성장한다. 217.

 

그들은 이미 당시에 그 같은 뇌를 지니고 있었지만, 초기 원시 공동체에 살면서 겪었던 경험들은 오늘날 가정, 마을, 학교, 일터, 노인시설 등지에서 겪는 일들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현재 다른 뇌를 가지게 되었고, 그들[인류의 조상]과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며, 또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다. 단, 예나 지금이나 다 함께 힘을 모아야만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226.

 

창의적이라는 것은 1차적으로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지만 서로 분리되어 있던 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 연결함을 뜻한다. 229.

잠재력을 발휘하고 계속 발전하려면 다른 공동체와 만나고 교류하는 길밖에 없다 229.

창조적인 잠재력은 닦달한다고 발휘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발휘하도록 초대하고, 격려하고, 영감을 줄 수 있을 뿐이다. 230-1.

 

부디 이제까지 내가 설명하고자 시도했던 여러 내용들 가운데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가는 데 어쩌면 의미 있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느낄 수 있기를 .... 23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