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웃는가'라는 질문은 '사람들은 왜 우는가'라는 질문과도 같이 다양하다. 우리는 슬퍼서 울고 기뻐서 울고 놀라서 울고 그냥 운다 이처럼 우리는 기뻐서 웃고 슬퍼도 웃음이 나오고 놀라서도 웃게되고 그냥 베시시 웃기도 한다. 웃음에 대해서 한가지로 정의내리는 것이 가능할까? 인생에서 한가지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

먼저 베르나르나르베르베르의 파라다이스를 떠올리며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했다.

# 과거: 사람들은 과거를 향해서 웃는다. 되돌아보면 심각했던 사건도 되려 웃음의 맛깔스런 재료가 된다. 그 당시에는 울음으로 보냈던 일들이 돌이켜 웃음이 되고 다른이에게 웃음을 주려 알리기도 한다. 또는 심각한 역사를 웃음으로희화화해서 웃기도 한다.

# 현재 : 사람들은 현재를 즐기며 웃는다. 비록 암울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의 중간지점에 넣여있을지라도, 웃음을 자아내는 재료와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작은 여유만 있다면 사람들은 여지없이 웃는다.

# 미래 : 사람들은 미래를 상상하며 웃는다.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미래나 혹은 아예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들을 상상한다.

또한, 사람들은 어쩌면 세상만사가 만만치 않다는 것에 절망하여 울다가도 또 생각만큼 심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 웃는 것이 아닐까. 과학적으로 인간이 웃는 반응을 추적한다한들 그것이 터져나오는 기쁨과 즐거움의 환호성과 비교될 수 없다.
최근에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보면 우리의 일상생활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다. 우리는 자막하나에 웃고 공감하고 운다.

나는 마지막으로 억지웃음과 조소룰 웃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사랑이 있기 때문에 웃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다리우스를 죽인 카트린은 자신의 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인 복수를 위해 웃음을 연구했다. 다리우스는국민 개그맨으로 명성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웃음이 아닌것이 된다. 다리우스는 그저 말주변이 좋은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도 웃는다면 웃음으로 넘긴다면 그안에 사랑이 있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웃음의 제목이자 감사의 제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