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믿음으로 가는 사흘 길
본문: 창 22:1-19                                                      
설교: 유경동 목사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일과 전도하며 봉사하는 일 등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신앙이 자라남을 경험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은 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장하는 것은 자라는 것이요, 크는 것이요, 눈에 보이는 것이요, 남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지만, 성숙한다는 것은 외적인 성장 보다는, 내면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성숙은 성장이 멈춘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성장하지 않는다고 죽은 것은 아닙니다. 멈춤이 곧 죽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숙이란 더 이상 크지는 않지만, 이제 내실을 기하는 것입니다. 성숙이 없는 성장은 비대하기만 합니다. 신앙의 성장이란  다른 것과 더불어 비교되는 것이지만, 성숙이란 어떤 의미에서 홀로 서는 것입니다. 자신과의 대화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결단입니다. 때론 주님께서 나의 기도에 침묵하심으로 나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성숙한 신앙의 특징은 어떤 것에도 뒤돌아서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어려운 문제와 시련은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성숙케 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을 위하여 여러분들에게 아브라함이 걸었던 믿음과 순종의 사흘 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금 봉독하신 구약 성경의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몸이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자신의 몸에서 아들이 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롬 4:19),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얻었고, 이런 일로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은 더욱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를 알고 싶으셔서 그를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시험은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창22:2). 하나님은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강한 사랑을 더욱 불러일으키면서, 그의 아들을 바치라고 요구하십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 할 장소는 모리아 땅에 있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한 산인데,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데리고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야했기에, 사흘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당시 번제란 제물을 죽인 후 각을 떠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서 속죄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헌신을 의미합니다(레1:3-17 ; 6:8-13).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뜻은 이삭을 소나 양, 염소처럼 죽여서 각을 뜬 후에 불 위에 올려놓고 태워서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집에는 온갖 짐승들이 많았고, 종들도 많았는데, 하필이면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요구하셨으니, 이는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벧전4:12)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번제를 드리러 사흘이나 되는 길을 가게 됩니다. 이 사흘 길 동안 과연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었을까요? 그리고 그 사흘 길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요?

첫째, 아브라함이 걸었던 사흘 길은 “홀로 서기”의 시간이었습니다.

홀로 서기의 시간인 이 사흘 길이 바로 아브라함의 신앙을 성숙하게 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삭을 바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순종이든 불순종이든 결단은 아브라함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이 사흘 길에 신앙은 더 이상 강제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결단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독자 이삭은 그의 전부라 할 만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존재였는데, 그를 번제물로 드림은 곧 자신의 모든 것과 자기 자신마저 불 태어 버림과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그가 평생토록 믿고 경외했던 분이신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고 아들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하는 귀로에서 사흘길이나 그는 홀로 결단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산을 향하여 가는 사흘 길 동안에도 침묵하셨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홀로서기의 사흘 길은 너무도 길고 먼 길이었으며, 외로움과 두려움의 시간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외롭게 걸었던 사흘 길은 신앙성숙의 시간이었고, 홀로 서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신과의 대화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결단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숨어버리셨고,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을 갖게 하는 성숙의 시간이었습니다. 밥이 다 되었다고 바로 먹으면 맛이 없습니다. 뜸이 들어야 합니다. 감이 찬 서리를 맞는 마지막 며칠을 견디지 못하면, 떫어서 맛이 없듯이, 우리의 신앙도 뜸이 들어야 합니다. 자신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홀로서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사흘 길을 가는 동안 아브라함은 “과거의 신앙을 새롭게 하여 다시 헌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을 보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 울 만 합니다. 아브라함은 과거 죽은 몸과 같은 자신에게서 아들이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순종과 결단, 그리고 믿음의 용기를 가졌습니까?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으로  늙어서 수태할 수없는 사라가 이삭을 낳게 되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그 소중한 아들을 바치라는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너무도 잔인했고, 만민의 아버지로 세우시겠다는 언약과 그동안의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듯한 비통함을 아브라함은 맛보았을 것입니다. 이제 과거의 신앙을 다시 한번 새롭게 할 시간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아브라함이 걸었던 사흘 길은 신앙 중의 신앙이 무엇이며, 헌신 중의 헌신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흘 길은 많은 것 가운데서 하나를 구별해 드리는 것이 아닌, 하나 밖에 없는 것을 드려야만 하는 자기희생의 결단을 다시 한번 하나님께 드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버리고,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며, 다시 한번 헌신을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앙과 헌신이 단 한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닌, 온전한 것을 향한 지속적인 일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헌신은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헌신은 현재의 일이며, 지속적인 것입니다. 그가 결단하여 걸어갔던 그 사흘 길은 철저하게 자기의 주장을 버리고, 자아가 죽어가는 길이었습니다.

모리아 산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의 고통은 더해 갔을 것입니다. 되돌아서고 싶은 유혹을 이겨낸 사흘 길은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고 했을 때, 비로소 그 여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로서 이삭을 향해 칼을 내리치는 행동은 자신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헌신은 자신에게 칼을 들이댈 때 완성됩니다. 칼을 들기 전 까지 우리의 헌신은 구호일 뿐이고,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수 있습니다. 칼을 들어서 내리치는 순간, 하나님은 비로소 우리를 인정하십니다. 진정한 헌신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느 한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내리쳐야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도 과감하게 내쳐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단절하는 결단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함으로써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인정하셨습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신앙을 인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사흘 길은 다시 인정받는 믿음, 온전한 믿음과 헌신으로 성숙되는 기간이었습니다.


셋째, 사흘 길은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과 축복을 깨닫게 하는 여정”으로 끝났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시험은 장차 큰 복을 받기 위한 연단의 시험이었습니다. 사흘 길에 침묵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성숙한 신앙을 갖게 하신 응답이었고, 그 성숙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받아 누릴 수 있는 엄청난 복을 허락하시기 위한 사랑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절대적 순종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그 시험을 거두시고, 독자 이삭의 생명을 보존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셔서 여러 가지 축복을 베푸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희생을 다짐하고, 이삭을 잡으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번제할 수양도 친히 준비해 주셨습니다. 선한 것으로 예비해 주시는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결단하고 자신의 소중한 것마저 아끼지 않고 드리게 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물로 거저주시는 구원과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무엇이 아쉬워 아브라함의 독자를 돌려받고자 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희생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의 풍성한 사랑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사흘 길은 아브라함을 홀로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자격자가 되도록 연단시키시고,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케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더 큰 사랑을 베푸시고자, 친히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코자 대신 십자가 위해서 처절한 죽음까지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걸었던 사흘 길은 홀로 가는 길이요, 온전한 신앙과 헌신을 이루는 길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축복의 길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외롭게 혼자 신앙의 길을 걷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무런 응답이 없어 초조해 하며 인생의 길을 걷는 분이 계십니까? 아브라함이 걸었던 신앙의 사흘 길을 기억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결단해야 하는 순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드렸던 헌신의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의 헌신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숙한 신앙에로 향하는 축복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으니, 뒤돌아서지 말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