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습니다. 넓은 길, 좁은 길, 산 길, 들 길, 시골
길, 도시 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길이 있는 목적은 가기 위함입니다. 누군가 산이 있어서 산을 올라갔다고 하였듯이 길이 나 있는 곳에는 문득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세상을 사는 법칙중의 하나는 바로 길을 잘 가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으레 누군가 먼저 같던 길은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우리는 그 흔적을 보고 가야 될지 말아야 될지를 결정하기 마련입니다.

길 중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길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길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뉴스에 보면 그 넓은 하늘에서 비행기들이 자주 충돌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망망대해 바다에서도 배들이 가끔 충돌하여 생태계를 오염시킨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게 되는데 그 이유는 보이지는 않지만 하늘이나 바다에서도 다녀야 될 길과 그렇지 못한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일종의 길을 걷는 신앙 인으로서 보이지 않는 길, 더군다나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는 길을 가는 셈이지요. 성서에 보면 믿음의 조상들이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되었다고(히 11:13)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신앙의 선조들은 이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정처 없는 인생 길을 살았을까요? 저들은 바로 하나님 나라로 가는 도상(途上)에 선 자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길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스쳐 가는 길거리의 것들이 그렇다고 무익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길거리에서 훈련받고 가야할 길과 그렇지 못한 길을 아는 영적 분별력을 키워나가고 또한 결코 혼자 외롭게 가는 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가는 것입니다. 기억하여야 할 것은 우리 예수님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가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생명의 길이요 영생의 길이요 진리의 길입니다. 부활하심으로서 우리에게 열어놓으신 그 도상위로 주님은 먼저 가셨습니다. 당신도 그 길 위로 걷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