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평전을 읽고

2016927

M.div 4/6 박광명

 

조조평전의 앞부분에는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뇌물 1억을 주고 관직을 산 사건이 나온다. 이에 저자는 떳떳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당시 상황에서 그런 것은 관습적이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사실 별 일 아니다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이 잘못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을 때, 나는 그 가운데서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 보았다. 물론 시대의 상황이 그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런 행동에 동조할지라도 나에게 큰 화살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고 살 것은 사람들이 나의 행동을 어떻게 여길지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봐야 할 것은 심판 후 하나님의 평가다. 내가 손해보는 것처럼 느껴져도, 때로는 바보처럼 느껴져도 이런 점이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히 차별되게 가지고 있어야 할 가치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조조평전을 통해 듣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겠다. 간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다. 간언을 잔소리로 들었던 저수의 의견을 무시했던 원소는 결국 망했으나, 순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천자를 맞이했던 조조는 승승장구했다. 나의 가치관, 고집, 경험 등을 잠시 뒤로 하고, 불치하문의 자세로 귀기울이는 것이 평생동안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 악을 원수처럼 미워했던 조조의 모습이 나오는데,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기를 권면했던 바울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악에 대해서는 어떠한 모습이든지 합리화하거나 수용하지 않는 훈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조의 장점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저자는 조조의 장점을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여 먼저 상대의 마음을 다독이고 자신이 뜻한 대사를 이룬 다음 천천히 상대를 도모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 상황을 조정하는 것이다. 물론 자식을 죽인 원수 장수와 가후를 받아들인 조조를 향해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큰 것을 바라보는 자라고 평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나의 이익을 위해, 내 중심으로 움직였던 그의 모습이 그리스도인이 닮아야 할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기독교에서는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는 역설을 주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조조평전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해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큰 그림을 보았던 조조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저의가 남들을 이용하고, 조종하는데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의 가치와는 반대된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손해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라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험한 세상에서 그 원칙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세상의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하늘의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그 길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나도 끝까지 그 길을 가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