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

죽음 이후를 말하다

 

- 인간의 유한성으로부터 -

 

 

 

세상에서의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100%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나 될까? 그 중 100%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죽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죽음의 끝에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인간에게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그들은 그것을 믿고 싶지 않을까? 어쩌면 베드로전서 3:19절에 있는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이 말씀이 그들에게 그렇게 들리지 않을까? 연옥이라는 개념이 개인적인 관점에서, 유한성을 가진 사람들의 바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국에 들어가고자, 들끓는 지옥불이 아닌 영원한 행복에 거하는 천국에 거하고자 하는 바람이 또 다른 출구로 표출 되듯이 말이다. 또한 전통적 그림에서 지옥이 마지막 도착지로 보일 수 있다. 지옥이 끝이 없고 영원한 고통으로 이어지며 이러한 형벌이 사악한 사람에게 결국에 주어지는 것이라고 보게 된다. 사실 이 때문에 많은 전통 신학은 구속받은 자들이 누리는 기쁨 가운데 하나는 저주받아 지옥에 있는 자들이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추정할 정도로 이기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마치 이기적 유전자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종족 번식을 통해 80년만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1억년을 살 수 있듯이, 구원을 통해 영원히 살고자하는 인간의 욕망은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앞에서도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울러 모든 주류 정통 신학자들이 취하는 공식 견해 중 하나는 오심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은 자들도 일으킴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가 죽으면 곧바로 영원으로 옮겨 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난점을 만들어 낸다. 아쉽게도 신약 성경은 죽을 때 천국에 가는 것을 주된 목표로 제시하지 않는다. 주된 목표는 몸으로 부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사실 교회에서도 가장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천국에 가는 것이다. 천국에 간다는 것은 곧 구원을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는 영혼 구원을 매우 중요시 했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러다 보니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 몸에 대한 관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유주의와 함께 보편구원론은 우리가 감당해야할 삶에서 시선을 저 먼 미래로 돌려 버린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 있는 것처럼 땅에서도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다. 이것은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사실임을 말하는 것이며, 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장소(하늘)가 아니라, 하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사실을 가리킨다. 이는 Kingship, 왕권이라 말할 수 있다.

C.S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 나온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금이 아니라, 막연한 미래에 관심을 두도록 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에 더 집중해야 한다. 찬송가 내 영혼이 은총 입어에 나오는 가사 중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의 의미가 나에게 더 깊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