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한 기독교를 읽고서

기독교 문화, 메시지를 전혀 듣지 못한 친구를 전도하기란 쉽지 않다. 특별히,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보편적 현실에서 기독교의 정수를 전한다는 것은, 몇 겹의 테이프로 둘러싸인  박스안의 초콜릿을 권해보는 것과 같다. 특별히, 거시적인 교단정치의 내부 싸움이 밖으로는 하나의 기독교로 비판을 받으니, 도대체 기독교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기도 전에 사람들은 지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신론자나 타종교인들에게 권해볼 만한 책이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이다. 책의 서문에사 역자가 지적했듯이, 문학자이자 비평가이며, 나니아 연대기를 쓴 아동문학가로써 알려진, C.S 루이스의 명성은 최소한 비기독교인에게는 폐쇄적으로 보이는 대형교회의 목사님들 보다 친근하다. 마치, 힐링캠프에 나와 컴패션을 홍보하는 차인표와 같이, 전문가는 아니지만 명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기니깐,

단순히, 이 책의 저자가 유명하다는 것이 순전한 기독교가 기독교 변증의 입문으로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다. C.S 루이스가 주지하듯이, 그는 최소한의 기독교적 상징만을 사용하면서, 누구나 접하고 처해진 보편적 상황으로부터 하나님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가령, 그는 자연법칙과 도덕률을 통하여,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에 대한 의지, 자각의 근원을 설명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한다.

중력의 법칙과 같이 의지와 무관하게 작용하는 자연의 이치와 달리, 인간은 무엇과의 관계와 사건 속에서 순간순간마다 선과 악 사이의 가치판단과 결단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곧, 결단은 인간의 자유의지며, 그러한 결단의 컨택스트를 제공하시며, 그 사건 자체를 자각하여 응답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곧, "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며, 어떤 법칙 아래 있는 존재"(57)이다. 유물론식의 갈등과 합의에 의해서 구성되는 세계가 아닌, 하나님이라는 실체에 근거한 기독교의 메시지를 변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정신을 떠나서는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곧 "도덕률이라는 사실이 정말로 존재하며, 그 법칙의 배후에 어떤 힘이 있고, 여러분이 그 법을 어김으로써 그 힘과 잘못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하는 것이다. (64)

곧,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 당신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당신을 찬양하고 즐기게 하십니다. 당신을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